다양해진 후원 사업 |2016. 08.09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꿈 이루는 작은자들

작은자복지선교회는 2001년 4월 21일부터 '이마트 영수증 마일리지'에 참여했다. 3개월 동안 모은 영수증의 0.5%가 작은자복지법인 후원금으로 입금되는 제도였다. 그러나 0.5%에 해당하는 금액이 1만 원 미만이면 더 이상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없게 되는 제한이 있었다. 마일리지함은 서울의 창동 이마트에만 설치돼 있었기에 이 제도를 통해 계속 후원금이 입금되려면 후원자들이 …

시설의 용도전환이 필요하다 |2016. 04.12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1994년 12월 31일로 KNH 후원은 종료됐다. KNH 후원은 1995년 1월 제9회 이사회에서 결산되었고, 1995년 8월 제10회 이사회에서 한 번 더 확인됐다. 제9회 이사회에 제출된 1994년 후반기 감사보고서에는 'KNH가 후원해 준 것에 대해 감사히 여기며 앞으로 그 자리를 여전도회전국연합회가 제도적으로 보완해주실 것을 건의합니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1994년 …

병합 후 작은자 선교의 목적 |2016. 02.16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첫 병합이사회에서 통과된 정관은 기존 작은자복지선교회의 것을 기본 틀로 하면서 더욱 구체적인 내용으로 수정 보완됐다. 원래 작은자복지선교회의 목적은 세 단락이었는데 이 세 단락의 문구 모두가 수정, 보완됐다.  먼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사랑의 현장 갖기 운동의 일환으로'라는 말이 '예수 그리스도의 작은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정신에 바탕을 두고 …

상황중심교육 |2016. 02.03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경기도 지역 교사들은 한 달이 채 지나기 전에 다시 모였다. 화성 조암신흥교회 선교원에서 경기지역 교사 8명이 모인 자리에 황화자 총무도 참석했다. 여기서 교사들은 참지 못하는 아이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참지 못하는 아이들을 유형별로 짜증내는 아이, 고자질하는 아이, 양보할 줄 모르는 아이, 때리는 아이로 나눴다. 그리고 때리는 아이는 왜 때리는지 이유를 분석하고, 그 상황에서 교사가 할 수…

한아협의 계승 |2016. 01.13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1990년 1월부터 준비돼 1991년 5월 27일에 발족된 작은자복지선교회는 한아협을 계승한 기구가 됐다. 황 총무는 '작은자복지선교 20년사'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작은자복지선교회를 설명했다.  "독일 선교후원금으로 시작된 '한독아동복지선교협의회'는 교회가 운영하는 아동복지 사업으로 전개되다가, 이름 모를 외국인들의 애정어린 사랑에 힘입어 작은자…

이관되는 사업 |2016. 01.13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작은자복지선교회 창립예배는 보름 정도 연기돼 1991년 5월 27일에 드려졌다. KNH 대표는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이날 모임 장소엔 한아협 사업과 관련된 사진들이 전시됐다. 이를 통해 한아협의 역사가 참석자들에게 잘 전달됐다. 이 사진 전시는 새롭게 발족된 '작은자복지선교회'가 한아협의 사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기관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창립예배에선…

새로운 명칭 찾기 |2015. 12.15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작은자후원회 임원들도 1991년 4월 '작은자복지선교회' 창립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새로운 기구 발족을 위해서는 남은 과제가 하나 있었다. 한아협과의 관계 정리였다.  황화자 총무는 1986년 모인 한아협 운영위원회 총회에서 명칭 변경을 제안했다. 황 총무가 제안한 명칭은 '한국교회아동복지회'였다. '한국교회아동복지회'와 관련해 황 총무는…

시설의 자립과 폐원 |2015. 11.17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정부 지원 늘고, 어린이 줄어

한아협 산하시설의 자립은 기금 비축이나 각 시설의 대책 마련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현실화 됐다. 가장 먼저 후원 종료를 자발적으로 요청한 시설은 광주 보이스타운이었다. 1986년 광주 보이스타운은 외부 후원금을 받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고, 이에 따라 KNH후원을 자발적으로 중단시켰다. 또 기금 조성에 참여했던 우도유아원은 1987년 유치원 시설인가를 받아 제주시의 지원을 받게 됐다. 더 이…

연곡작은자의집 증축 |2015. 11.03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너희가 세상의 빛이다"

1989년 4월 첫 입주가 시작되고 입주자들은 하나 둘 늘어갔다. 3개월쯤 지나자 13명의 장애인들이 이 작은 집에서 함께 살았다. 입주 정원은 초과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입주를 원하는 장애인들이 있었다. 가을이 되면서 2명의 장애인들의 입주가 어쩔 수 없이 허락됐다. 15명이 작은 조립식 건물에서 살아야 했다. 봉사자인 이승재 전도사(현 작은자복지재단 국장)와 몇몇 사람은 마루에서 지냈다.…

KNH 협력기관들과의 교류 |2015. 09.23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1987년 해외 KNH 선교협력기관과 교사 교환 프로그램이 기획됐다. 기획 의도는 3~6개월 정도 다른 나라 프로그램에 참여해 서로의 어려움을 살피고 장점을 나누며 폭넓은 유아교육 경험을 쌓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1987년 1월 한아협 총회 결의를 거쳐 추진됐다. 프로그램 실행을 위해 독일 KNH에 항공비 협조가 요청됐다. 그리고 희망하는 교사는 신청하도록 3~4월호 …

작은자 관련 교역자 모임 |2015. 08.25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돌봄, 교역자의 몫

작은자후원회의 결연사업은 지역 교회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운영됐다. 지역 교회 교역자의 추천으로 결연이 시작됐고, 후원금 전달과 후원아동 돌봄 역시 지역교회 교역자들의 몫이었다. 그래서 후원회 결연사업이 1년 정도 지속됐을 때 작은자후원회 임원들은 지역교회 교역자들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1988년 11월 작은자후원회 임원들과 지역 교회 교역자들의 만남이 추진됐다.…

후원자들의 증가 |2015. 07.28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넓어진 섬김의 지경

작은자후원회의 시설지원 활동은 후원금을 지원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1987년 5월 작은자운동에 동참하는 무학교회 여전도회 임원들이 한아협 산하시설인 장안제이유아원을 방문했다. 그리고 후원아동들을 만나 격려하고 푸짐한 불고기 파티를 열어 주었다. 독일의 후원자들과 후원 아동들은 오로지 편지와 선물,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국내 후원자들과 후원 아동들은 그와 같은 방법 …

작은자를 위한 모금 운동 |2015. 07.22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1990년 KNH 후원 종결이 통보되기 5년 전부터 한아협에서는 국내외 모금 운동인 '작은자운동'이 펼쳐졌다. 1987년 이 모금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임 '작은자후원회'가 발족됐다. 작은자후원회 정관에서 밝히는 작은자후원회 사업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우리나라 저소득층 아동과 청소년의 재정적인 어려움을 지원하기 위한 후원자 모집이다. 둘째, 곤경에…

후원사업의 시작 |2015. 07.22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후원회 발족 첫 해 한아협 산하시설에 작은자후원회 후원금이 보내졌다. 이 후원으로 강원도 황지교회 늘봄어린이집 주방, 장안제일어린이집 도서관, 장전어린이집 목욕실과 에덴어린이집이 건축됐다. 또한 샘터교회유아원 원아 수술비로도 사용됐다. 이 원아는 흉부에 종양이 있었으며, 아버지와 살고 있었다. 이 어린이의 수술을 위해 세광병원과 뜻 있는 몇 사람의 도움이 더해졌다. 작은자후원회 후원은 한아협…

KNH의 다양한 후원 활동 |2015. 07.07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2주 동안의 성형수술

KNH 후원은 경제적인 부분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의료적인 도움도 제공했다. KNH는 국제성형외과 봉사회 서독협회와 협력관계를 갖고 있었다. 이 단체는 성형외과 의료팀과 간호사들을 후원국에 파송해 화상환자, 피부종양, 선천적 기형 환자 등 성형수술이 필요한 이들의 수술을 무료로 해주는 단체였다. 수술이 아주 복잡한 경우에는 독일로 초청해 수술하기도 했다.  1987년 KNH 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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