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H의 다양한 후원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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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2주 동안의 성형수술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5년 07월 07일(화) 17:12

KNH 후원은 경제적인 부분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의료적인 도움도 제공했다. KNH는 국제성형외과 봉사회 서독협회와 협력관계를 갖고 있었다. 이 단체는 성형외과 의료팀과 간호사들을 후원국에 파송해 화상환자, 피부종양, 선천적 기형 환자 등 성형수술이 필요한 이들의 수술을 무료로 해주는 단체였다. 수술이 아주 복잡한 경우에는 독일로 초청해 수술하기도 했다. 

1987년 KNH 루어스 총무는 한아협 산하시설에도 성형수술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황화자 총무는 성형수술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고 있었으나 산하시설에 확인한 결과 성형수술이 필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많았다. 무료 수술이 절실하기도 했다. 그대로 독일에 보고됐다. 그런데 KNH 협력 의료기관에서 우리나라 무료 수술이 거부됐다. 한국은 올림픽을 치를 정도로 부유한 나라이기에 무료 수술이 필요하지 않다고 보았던 것이다. 

황 총무는 수술대상 환자들의 가정 환경과 부위를 상세히 설명했다. 그 가운데 3도 화상 환자는 경기도 평택군 호암교회 사모가 돌보고 있는 학생이었다. 그는 화상을 입고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됐다. 그 바람에 팔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고, 얼굴도 일그러졌다. 그 학생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17세가 된 누나가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하며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와 살고 있었다. 한아협의 수술요청서에는 우리나라 성형외과 의사들이 국제성형외과수술봉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동기 부여 계획도 첨부됐다. 프랑크푸르트 디아코니아 병원장이면서 성형외과 의사인 람페 박사(Dr. Lampe)는 그 첨부사항을 눈여겨보았다. 이 첨부사항은 세계 자원 활성화라는 그 단체의 목적에 부합했다. 그는 1988년 10월경에 방한하겠다고 알려왔다. '선교와 사회복지' 1988년 7~8월호를 통해 산하시설에 이 사실이 공지됐다. 

성형수술을 받게 될 사람들이 정해졌다. 3도 화상을 입은 학생, 선천적으로 손가락이 붙은 사람, 언청이 등이었다. 그런데 문신제거수술을 요청해온 사람들이 있었다. 독일 의사들은 이 요청을 수락하지 않았다. 문신은 생명에 지장을 주지도 않을 뿐더러 육신적으로도 불편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건대원(일명 넝마주의)들은 소년원이나 교도소에서 문신을 새겼다. 무료해서 새기기도 했고, 순간적인 영웅심 또는 호기심 등의 이유로 그들의 몸에 문신을 새겼다. 그러나 문신은 새로운 삶을 살기로 작정한 그들에게 큰 걸림돌이 됐다. 문신 때문에 범법자 취급을 받기도 하고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넝마주의 생활로는 수술비용을 마련할 수 없었다. 이런 사정들이 독일 의사들에게 설명됐고 수술이 가능해졌다. 

한아협 운영위원회 임원들은 성형외과 수술 지원을 준비했다. 수술실을 빌려줄 병원과 수술에 동참할 의사를 찾아보았다. 1988년 10월 4일부터 17일까지 2주 동안 진행된 이 수술을 위해 장위동 소재 김윤외과 원장이 기꺼이 병원을 빌려주었다. 국립중앙의료원 이세호 과장과 연세세브란스 병원 이영호 과장과 수술 전 진료도 의논됐다. 

1988년 10월 국제성형외과봉사회 서독협회에 속한 성형외과 의사 3명과 마취사 1명, 간호사 1명이 우리나라에 왔다. 이들은 직장 휴가를 받아서 봉사하러 왔다. 독일 교회들의 후원으로 마련된 약품도 가져왔다. 의사들은 헌신적으로 수술에 임했다. 그 결과 나면서부터 붙어있는 어린 딸의 손을 보며 마음 아파하던 어머니가 평안을 찾았고, 문신이 없는 깨끗한 팔과 높이 치켜 들 수 있는 건강한 팔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과 몸이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2주 동안 진행된 성형수술로 치유받은 사람들은 66명의 저소득층 사람들이었다. 
좋은 결과를 보고 한아협은 성형수술사업이 계속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한아협이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날 때까지 성형수술지원사업은 계속 이어지지 않았다. 

/여전도회작은자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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