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들의 증가

후원자들의 증가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넓어진 섬김의 지경

차유진 기자 echa@pckworld.com
2015년 07월 28일(화) 16:28

작은자후원회의 시설지원 활동은 후원금을 지원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1987년 5월 작은자운동에 동참하는 무학교회 여전도회 임원들이 한아협 산하시설인 장안제이유아원을 방문했다. 그리고 후원아동들을 만나 격려하고 푸짐한 불고기 파티를 열어 주었다. 독일의 후원자들과 후원 아동들은 오로지 편지와 선물,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국내 후원자들과 후원 아동들은 그와 같은 방법 외에도 얼굴과 얼굴을 대하며 현장에서 직접 함께 호흡하며 소통하기도 했다. 

한아협 산하시설 방문은 또 다른 모금 활동으로 이어졌다. 1988년 무학교회 여전도회 회원들이 한아협 산하시설을 방문했다. 이후 무학교회 당회에서는 작은자와 교인들의 결연을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황 총무를 초청해 작은자후원회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100여 명의 작은자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또한 당시 무학교회 김광웅 목사는 1988년 작은자후원회와 예장 사회부, 평택시에서 추진한 평택 청지기선교복지회 지체장애인 결혼식 주례를 맡기도 했다. 교회의 한 부서가 작은자운동에 참여하면서 그 영향이 전교인에게 미쳤으며, 다양한 후원으로 열매를 맺었다. 산돌교회 교인들은 1988년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의류를 모아 서울후생학원 등에 전달했다. 강남성결교회에서 보내온 옷들은 충남 부여에 있는 가원교회와 전남 고흥군 신평교회에 전달됐다. 한남제일교회에서는 유아용 티셔츠와 내의 200여 벌을 기증해 주어 전남 신안군 도초교회와 부산 서동어린이집에 전달됐다. 망우동에 사는 후원자는 어린이용 실내화를 기증했다. 작은자 운동이 진행되면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미국과 국내 뿐 아니라 독일에서도 이 운동과 후원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독일 후원 단체인 KNH와는 별도로 독일 한인교회 교인들이 여기에 동참했다. 독일 본에 있는 교회학교 어린이들은 1988년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작은자들을 돕기 위해 공작품을 만들었다. 4주에 걸쳐 만든 공작품으로 바자회를 열었고, 여기서 모은 22마르크를 우리나라 어려운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보내왔다. 독일 듀이스부르크 한인교회 여신도회에서도 후원금을 보내왔다. 작은자운동이 처음 시작됐던 미국에서는 후원자들이 점차 많아졌다. 또 미국 뉴욕에 사는 김성래 집사가 성경과 찬송을 기증하는 등 국내 후원회 활동과 마찬가지로 해외후원 형태도 다양해졌다. 

작은자운동과 그에 따른 후원회 발족으로 국내외 교회들이 한아협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한아협 사업의 대상과 지경도 넓어졌고, 사업도 다양해졌다. 이 모든 사업들이 작은자후원회 독단으로 처리된 것은 아니었다. 모든 사업은 한아협 운영위원회 임원회와 총회에 보고되었고, KNH에도 보고됐다. 

작은자후원회 사업 중 하나가 후원자와 후원 아동들의 만남 주선이었다. 이 사업은 1987년 7월 30일 '작은자운동 가족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같은 해 7월에 열린 한아협 임원회에서는 작은자후원회에서 연례적으로 개최하도록 결정됐다. 

/여전도회작은자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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