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입은 성직자, 군종장교의 두 신분

군복입은 성직자, 군종장교의 두 신분

[ 미션이상무! ]

최광수 목사
2023년 05월 17일(수) 08:31
최광수 군종목사가 훈련중 야전추모의식을 시행하고 있다.(전사자에 대한 경건한 추모의식은 생존 장병들의 전투의지고양에 큰 영향을 끼친다)
군종병과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에 창설되었다. 혹독한 포화 가운데 수많은 전우가 죽거나 다치는 사선(死線)에서 한 무명 용사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군에 성직자를 보내 주셔서 신앙의 철판을 두르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정부는 군종목사를 파송하였고 그렇게 군종병과가 창설되었다. 이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군종장교는 군에서 장병들의 신앙전력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군종목사는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예배 및 다양한 종교활동을 주관하면서 교회를 세워 갈 뿐 아니라 부대 내 참모장교로서 교육, 선도 및 대민 업무도 담당한다. 왜 성직자가 전투복을 입고 군에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예배에 참석하고 싶은 장병들이 있으면 부대 인근에 있는 민간 교회에 출석하도록 할 수도 있고, 인근에 있는 민간 목회자가 부대에 방문해 예배를 인도하는 소위 '아웃소싱'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인은 평시와 전시를 항상 고려해야 한다. 평시에도 군종장교의 역할이 있지만 '군복을 입은 성직자'로서 군종장교가 가장 필요한 곳은 바로 전시(戰時)이다.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로 맞닿아 있는 전쟁터를 생각해 보자. 100명의 장병들로 구성된 부대에서 전투가 벌어져 한 명의 장병이 전사했을 때, 부대는 전투력이 1% 감소했다고 본다. 아직 99명의 장병이 남아 있기에 99%의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전투를 경험하고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그 부대의 전투의지력은 채 50%를 넘기기 힘들다. 전투가 벌어지면 극심한 스트레스 환경에 노출되어 신체적, 심리적 스트레스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도로에서 로드킬을 당한 동물의 사체를 직접 가까이에서 보게 되면 그 처참함으로 인해 속이 메스꺼워지고 차마 바로 보기가 어렵다. 사람의 경우 정도는 더욱 심할 수 있다. 전투 중 사망한 동료 전우의 시신을 보거나 심한 부상을 입은 전우를 목격한 경우 심리적으로 입는 충격은 매우 크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동료 전우를 잃었다는 상실감과 동료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심리적인 부담감을 갖게 되고, 이성적인 판단이 마비되어 극심한 공포감과 무력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전장(戰場)에서는 적에 대한 분노에 휩싸여 평정심을 잃고 과잉살상을 하거나 자제력을 상실하여 폭주하는 장병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군종장교는 이런 치열한 전쟁터에서 신앙의 보루이자 상담가로서, 그리고 윤리적 조언자로서 군복을 입고 장병들과 함께 있다. '참호 속에 무신론자는 없다'는 유명한 문구는 바로 이러한 치열한 전장에서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고 싶은 장병들의 불안함과 절박함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신앙을 통해 장병들의 마음과 영혼을 돌보는 파수꾼이 바로 군종장교이다.

대한민국은 국력의 향상과 더불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국방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방산기술은 유럽시장에서까지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우리 국군은 적의 위협에 맞서 적을 압도하기 위해 많은 첨단 장비들로 현대화하고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유형전투력' 못지않게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전투력'에 대한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 첨단 장비를 운용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며, 그 사람을 지키는 가장 큰 힘은 바로 '신앙'이기 때문이다. 시대의 거센 흐름은 종교에 대한 관심이 점차 없어지는 탈종교, 무종교의 시대로 우리를 이끌지만, 여전히 '신앙'은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로 작용하고 있다.

최광수 목사 / 25사단 상승교회·육군 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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