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는 예배자여야 한다

목사는 예배자여야 한다

[ 목양칼럼 ]

정영수 목사
2023년 04월 26일(수) 14:10
필자의 모교는 대구에 있다. 그곳에서 처음 예배를 인도한 것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중고등부 인원이 50여 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나이였지만 기도원에서 소나무 뿌리도 흔들어보고 항상 기타를 연주하며 찬양한 결과 기회가 주어졌다.

이렇게 성장한 필자는 청년시절 교회가 어려울 때 목요예배를 진행했고, 찬양단을 창단해 외부 활동까지 감당하도록 성장시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는 교회에 복사기가 없어서 단골 인쇄소에서 악보를 복사하고 가위로 로리고 풀로 붙여 사용했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신학교에 편입하면서 대구의 한 선교단 멤버로 활동을 시작했고, 찬양과 예배 인도자로 수 많은 집회에 참석했다.

어릴 때부터 항상 찬양을 부르며 자랐기에 말씀을 준비하다 보면 찬양 가사가 자주 마음에 떠 오른다. 그런데 필자가 말씀을 준비할 때 떠오른 찬양을 대예배 설교시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말씀을 준비하다 보면 필자의 마음에는 '찬양해 위대하신 주(곡명:빛나는 왕의 왕)'라는 가사가 와닿는데, 산골에 계신 60~70대 어르신들이 평생 한번도 듣지 못한 찬양이다 보니 결국 다른 곡으로 대체한다. 이렇게 설교를 진행하니 정작 설교를 준비한 필자는 감동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목사는 항상 예배자여야 한다'는 신념을 놓지 않고, 오후예배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먼저 교회에 찬양팀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결과를 예상한 독자도 있겠지만, 목사 가족 찬양팀이 생겼다. 필자가 기타를 치며 찬양을 인도하고, 아내와 자녀들이 건반과 드럼 등 악기를 담당했다.

드디어 첫 오후 찬양예배가 시작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빠른 찬송가를 목이 터져라 부르는데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예배 후 찬양팀이 모였다. 모두가 '이런 냉랭한 반응 속에 드리는 찬양예배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목회자로서 쉽게 물러설 수는 없었다. 가족들을 설득했고, 찬양예배를 계속했다. 그런데 어느덧 하나님의 시간이 됐다. 찬양예배를 시작한지 3개월이 지날 무렵 여름방학을 맞아 조모 댁을 방문한 손자들이 우리 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찬양이 시작되자 아이들이 신나게 박수를 치며 함께 찬양했다. 손자들의 호응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박수를 유도했고, 어르신들도 어색한 모습으로 박수를 치며 찬양하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뜨거운 찬양과 기도가 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때로는 느린 찬양 중에도 열심히 박수를 치는 어르신이 계셔 고민될 정도다. 그리고 "주여"를 외치는 것조차 이상하게 여겼던 교인들이 이제는 모두 간절히 주님을 찾으며 기도하고 있다.

얼마 전 시찰 내 5개 교회가 연합해 부흥회를 가진 적이 있다. 저자가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는 데 본교회 어르신들이 가장 큰 목소리로 찬양하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정말 멋진 예배자들이 됐구나'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 이 예배의 열정을 다시 젊은이들에게 전하려고 한다. 포항노회 청년연합회는 7년 전부터 목요집회를 열고 있다. 필자가 포항노회 청년연합회 지도목사로 부르심을 받았기에, 부족하지만 열정을 가지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목사는 언제 어디서나 예배자여야 한다.

정영수 목사 / 상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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