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순전 정결할 때, 이단 도전에 응전할 수 있다

교회가 순전 정결할 때, 이단 도전에 응전할 수 있다

[ 4월특집 ] 자칭 신을 외치는 시대 1. 이단 66만명 시대의 자화상

탁지일 교수
2023년 03월 31일(금) 07:47
"나는 신이다"라고 외치는 이단 교주들이 난립하고 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한국기독교분석리포트(2023년)에 따르면, 국내 이단 신도들의 숫자가 최소 34만 명에서 최대 66만 명에 이른다고 추정한다. 만약 기독교계뿐만 아니라, 불교계나 동학계의 자칭 신들, 그리고 기성종교의 우산 아래 암약하는 교주들까지 포함하면, 바야흐로 우리나라는 사이비 신들의 왕국이 되었다.

흔들리는 대한민국

2014년 세월호사건, 2016년 최순실국정농단사건과 최태민, 2018년 이재록의 성범죄와 신옥주의 폭행과 학대, 2020년 코로나19 확산과 신천지, 2022년 아베신조 전 일본총리 살해사건과 통일교. 지난 10년 간 격년으로 일어난 초대형 사건들에는 어김없이 기독교 이단사이비 단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단은, 교회의 문제일까, 아니면 사회적 문제일까?

집단 망각

잊어도 너무 빨리 잊는다. 이단 관련 사건들이 격년으로 발생할 때 마다, 언론은 호기를 만난 듯, 하루도 빠짐없이 이단을 탈탈 털면서, 시청율과 구독률을 동시에 잡으며 실리를 챙겼다. 그리고 대중은 마치 희생양을 발견이라도 한 듯, 분노와 정죄의 주홍글씨를 온라인 곳곳에 댓글로 새겼다. 하지만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섭도록 빠르게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하곤 했다. 이단이 문제일까, 아니면 우리의 집단 망각이 문제일까?

후안무치 언론

실리를 쫓는 언론의 행보는 더욱 참담하다. 매번 사회적 사건을 야기한 이단을 비난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얻는 동시에, 마치 교회가 이들의 악행을 만들어낸 원인제공자인 것처럼 냉소적으로 비판하면서 반기독교 정서를 조성해 온 언론들이 있다. 하지만 자신들의 보도에 대한 최소한의 자존감도 지키지 못한 채, 이단이 요구하면 요구하는 대로 반론보도와 정정보도를 실어주고, 최근에는 해당 이단들을 홍보하는 광고와 기획기사를 거리낌 없이 생산하며 이율배반의 돈벌이에 여념이 없다. 이단이 문제인가, 아니면 얄팍한 언론의 상술이 문제인가?

이벤트성 매너리즘

심각한 이단 피해 이슈가 등장할 때 마다, 교계 안팎에서는 실효성이나 지속가능성이 없는 이벤트성 대책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장기적 예방과 대처를 위한 실질적인 대안이 제시되기보다는, 뻔한 원론적 차원의 주장을 반복한다. 이곳저곳에서 이벤트성 대책 모임을 갖고, 사진을 찍고, 보도 자료를 배포한 후, 언론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면, 다음 이슈가 나올 때까지 다시 침묵한다. 이단이 문제인가, 아니면 일회성 이단대처 퍼포먼스에 길들여진 교계의 매너리즘이 문제일까?

이단의 질주, 교회의 일탈

이단과 교회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단과 교회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이단에 대한 교회사적 연구를 통해, 동시대 이단의 본질을 간파할 수 있다. 또한 이단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통해, 동시대 교회의 훼손된 정체성을 짐작할 수 있다. 교회의 신앙과 신학은 이단들과의 비타협적인 투쟁의 결과물이다. 교회가 순전하고 정결할 때, 이단의 도전에 담대하고 거침없이 응전할 수 있다. 이단의 비상식적 악행이 문제일까, 아니면 이단의 거침없는 질주를 당당하게 제어하지 못하는 교회의 일탈이 문제일까?

이단의 간계, 교회의 안전장치

'나는 신이다' 방영 이후, 교회를 향한 거센 후폭풍이 불고 있다. 이단들도 대부분 '교회'라는 간판을 걸고 있기 때문에, 교회가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정통의 가면을 쓴 이단들의 정체를 기독교인들도 분별하기 쉽지 않다. 이단들은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거짓말과 위장으로 포교하는 한편, 문제가 생길 경우 비난의 화살이 교회로 향하도록 물 타기를 하는 간계를 부리고 있다. 정통교회의 표식으로 교단 마크 사용 등의 대안을 강구했지만, 이단들은 이마저도 도용하고 있다. 이단의 간계가 문제일까, 아니면 교회의 안전장치 미비가 문제일까?

트렌디한 이단, 올드한 교회

JMS는 물론이고 신천지와 하나님의교회 등 최근 두각을 나타내는 이단들의 포교방법은 트렌디하다. 한류를 이용하는 'K이단'의 모습으로 세계 곳곳을 공략하고, '하이브리드이단'의 모습으로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면서 시공을 초월한 미혹을 진행하며, '코스프레이단'의 모습으로 양의 옷을 입고 거리청소와 헌혈 등의 사회적 순기능을 노출하고 있다. 게다가 '채팅'이 곧 바로 '미팅'으로 이어지는 지역기반 중고거래 온라인마켓은 이단천지가 되었다. 이렇게 트렌디한 모습으로, '친절'하게 접근해,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치밀'한 미혹을 진행한 뒤, 회복조차 힘든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 트렌디한 이단이 문제일까, 아니면 레트로에 물든 올드한 교회가 문제일까?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고백처럼,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한다. 개혁을 멈춘 교회는 더 이상 개혁교회가 아니다. 이단이 활개 치는 세상 속에서, 고립무원의 심정으로 고군분투하며 힘겹게 그려내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자화상이 애틋하다.

탁지일 교수 / 부산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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