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불통(不通)의 종교인가

기독교는 불통(不通)의 종교인가

[ 주간논단 ]

윤효심 목사
2023년 03월 14일(화) 09:18
우리 시대의 독보적인 사회운동가이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공감'이라는 렌즈를 통해 인류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공감은 미묘한 균형감각을 필요로 하는 행위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다른 사람의 곤경을 자신의 일처럼 체험해야 하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독립적 존재를 만들어주는 자아의 능력까지 버려서는 안된다. 공감에는 나와 너를 연결하는 소통의 통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두 존재의 정체성을 합치고 공통의 정신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동정'(sympathy)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상대방의 감정에 자신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공감'(empathy)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상대방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헤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감을 확대하고 유대감을 추구하는 노력은 곧 소통의 의지라고 볼 수 있다.

제러미 리프킨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세계 유수 종교들의 중심적인 이야기는 실체가 없는 탈속(脫俗)적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공감을 확대하고 유대감을 추구하려는 노력을 가로막고 신의 내재성(內在性)을 차단한다고 말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기독교는 신의 내재성이 없는 불통(不通)의 종교들 중 하나인 셈이다. 과연 기독교는 신의 초월성만 긍정하고 내재성은 부정하는 종교인가?

요한복음서 서문은 이에 대한 확실한 반증을 보여주고 있다. 영원한 하나님의 '로고스'(말씀)가 유한한 피조물인 인간의 육체가 되어 이 세상 가운데 거주하며 인간을 공감하고 유대감을 형성한다는 놀라운 사실이 선포된다. "말씀(로고스)이 육체가 되었다"는 것은 이제 모든 인간이 그 신분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기독교는 신의 내재성이 없는 불통(不通)의 종교가 아니라 신이 인간을 공감하고 그 연약함에 동참한 소통의 종교라고 볼 수 있다. 육체가 된 로고스는 인간을 공감하기 위한 하나님의 소통의지를 보여준 가장 인상적인 사건이다. 하나님의 로고스인 예수께서 모든 인간을 조건 없이 사랑하며 나약한 육체적 존재로 살다가 인간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버렸다는 사실은, 인류에게 커다란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예수께서는 모든 인간을 개별적으로 공감하고, 그들 가운데 벌어진 혈연과 지연, 사회적 신분과 성차별의 간극을 메우며 하나의 유대감으로 묶어 놓으셨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 공동체인 교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로고스의 성육신적 영성을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교회는 세상 가운데서 이러한 성육신의 사명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 것인지 깊이 숙고해보아야 한다.

이제는 주입식 복음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지적인 이해나 동의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시대이다. 배타적이며 특권 의식적인 끼리끼리 문화 속에서 탈피하여 타자의 경계 긋는 일을 지양하고, 서로의 간극을 메우는 적극적인 소통의 삶으로 이루어내야 한다.

예수께서는 유대교의 가르침을 창조적으로 해석하여 복음을 선포했고, 1세기 사도들은 유대교와의 긴장을 유지하며 그리스·로마 문화를 탄력적으로 적용하여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복음은 소아시아 지역을 넘어 전 세계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복음의 메시지와 교회의 가르침이 우리 시대의 삶과 신앙에 역동적으로 소통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못한다면 그것은 퇴행적 가치가 되어버릴 뿐이다. 1세기 로고스의 생명이 21세기의 우리 안에서도 호흡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윤효심 목사/여전도회전국연합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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