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이뤄질 현실"

"평화,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이뤄질 현실"

[ 연중기획 ] '그래도 가야할 길…평화' 2. 왜 기독교인은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하나?

김회권 교수
2023년 03월 14일(화) 08:11
세계사의 어느 한 순간도 국가/민족간의 갈등과 분쟁이 그친 적이 없었다. 뉴밀레니엄은 전쟁의 세기이기도 하다. 2001년 9. 11사태와 2001년 11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으로 뉴밀레니엄은 전쟁으로 시작됐다. 작년 2월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은 뉴밀레니엄의 전쟁분위기를 악화시키고 전 세계를 전장화하고 있다. 이사야 2장 4절은 시온에 야훼의 보좌가 견고히 서는 날 세계 여러 나라들과 국가들은 전쟁을 그치고 모든 전쟁무기들을 생산적인 농기구로 만드는 날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 날에는 시온에 몰려든 열왕들과 열국 백성들이 야훼의 토라를 공부함으로써 평화를 배움으로써 모든 나라들은 전쟁 연습을 할 필요를 더 이상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유토피아적인 평화가 실현되기까지 인류는 전쟁의 위협 아래 노출되어 있다. 이런 상황 아래서 우리 겨레도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70년의 정전상태가 평화체제의 정착되지 못하고 오히려 평화정착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현재 한반도는 한층 더 격화된 핵전쟁 가능지역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75년간 지속된 남북한 분단체제는 민족 내부역량이 소진된 시기만은 아니었다. 이 75년간은 분단극복을 위한 민족내부의 역량이 결집되고 발출된 시기이기도 했다.

한반도의 통일논의는 1948년부터 72년까지 김일성의 북한이 주도하는 무력 적화통일담론에 지배당했다. 김일성의 통일담론은 한국전쟁을 통해 폭력적으로 표현됐다. 그래서 1991년까지 북한주도의 한반도 통일논의는 남한의 통일논의를 크게 위축시켰다. 노태우 정부의 1980년대 말 북방외교와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 채택과 1991년의 남북한 유엔동시 가입 전까지 남한의 통일논의는 '좌경용공세력들'이 독점물이라고 폄하되며 경원시됐다. 노태우 정부부터 정부 수준의 통일담론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것이 김영삼 정부의 한민족 공동체 통일안, 김대중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안 등으로 발전됐다. 노태우 정부의 대북정책, 한반도 분단체제 규정과 이해, 그리고 김영삼 정부의 통일정책 등이 조금씩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세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도 열리게 됐다.

돌이켜 보면 이런 남한 정부 당국자의 평화통일운동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박정희 대통령의 70년 8.15선언과 72년 7.4남북공동성명의 위상은 특별하다. 1970년 8월 15일에 발표된 8.15 선언은 1970년대 이후 남북한 관계를 획기적으로 전환시킨 역사적 분수령으로서, 남한정부 자체가 한국전쟁의 내상을 주도적으로 극복하고 남북한 적대적 분단체제를 종식시켜 보려고 시도했던 최초의 평화통일 운동이었다. 1971년 8월 12일 이후 남북적십자회담,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1991년 12월 13일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이하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2007년 '10·4 남북공동선언'과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모두 이 8.15 선언의 연장선상에 있다.

8.15선언은 북한 정권을 선의의 체제경쟁대상으로 인정하며 평화대화 교류를 통한 남북평화공존을 먼저 내세웠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대한민국의 헌법조항에 의거하여 한반도 북쪽은 공산주의 반군단체가 일시 장악한 지역이라고 보는 관점에 아니라, 북한지역에 사실상의 공산정권이 존재한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더 나아가 8.15 선언은 정치적 행정적 국가통일 이전에, 긴장 긴장완화, 전쟁방지, 평화정착과 같은 중간 단계의 평화, 즉 요한 갈퉁의 소극적 평화의 우선정착 필요성을 인정하며 이 남북 적대적 분단을 우리 겨레가 주체적으로 해결할 역량을 결집해 보려고 시도했다. 이 8.15선언에는 1970년을 전후로 북한의 경제력을 추월한 남한의 자신감을 반영하고 있었다. 김대중의 햇볕정책, 노무현의 민족번영 정책, 문재인의 민족화해 정책 등도 남북 체제경쟁에서 남한이 이겼다는 자신감의 열매였다. 박정희의 7.4남북공동성명과 그 이후에 전개된 남한 내부의 30년 통일화해담론의 열매가 김대중 정부 이후 민주정부들이 자신감 넘치는 남북정상회담 추진이었다. 정전체제 70년을 평화공존체제로 변화시키려던 남한 정부들의 노력은 결코 배척되어서는 안될 소중한 자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적 전쟁무기, 군사력, 정치경제적 헤게모니의 지렛대를 장악한 사람들의 눈에는 이런 평화통일론자들의 논리가 유치하고 어리석으며 때로는 악마적 세력들에게 부화뇌동하는 약골담론으로 비칠 수도 있다. 작년에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핵무장한 북한을 상대로 힘의 우위를 확보해서라도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려고 한다. 중국의 태평양 진출 봉쇄에 치중하는 미국의 쿼드체제와 공조해 대중국 긴장도를 높이는 한편 현 정부는 북한을 봉쇄, 고립함으로써 북한체제를 궤멸하려고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 정부는 힘의 우위를 확보한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대북강경책을 견지함으로써 '북한에게 집착'하는 태도보다는 '한미일 동맹중심'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해 오고 있다. 이런 정부의 대북강경 기조는 "한반도평화 통일논의 자체가 과연 가능한가"라는 근원적인 회의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극한 회의감에도 불구하고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겨레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

첫째, 우리가 믿는 주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이시며 주이시기에 우리는 겨레의 평화통일을 위해 투신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희생시켜 적대적 대치상태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를 화해시켰고, 하나님과 세상을 화목케 하셨다. 상호멸절적 적대상태에 있는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 평화를 선사하시는 평화의 왕이 되셨기 때문이다. 이사야 2장의 시온산의 평화학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쏟아져내리는 평화의 보혈을 마시는 열방들이 서로를 향한 적대심의 면박을 벗고 화해하며 평화를 누리는 연회(사 25:5-9)이다.

둘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화평케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겨레의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교회를 창조한 오순절 성령은 모든 적대적 관계를 청산 극복케 하는 평화의 영이요, 하나되게 하는 영이다. 성령은 어떤 살상용 무기보다 강한 하나님의 거룩한 평화창조의 권능이자 전쟁을 좌절시키는 거룩한 방패이다. 한반도 평화는 한반도 분단체제 형성에 관여한 미중일러같은 초강대국들의 외교협상으로나 혹은 전쟁으로 성취될 수 없다. 한반도 평화는 하나님 나라의 정치적 아젠다이며 성령의 감화감동으로 창조된 새 하늘과 새 땅의 실상이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며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한반도 평화는 보지이 않지만 반드시 이뤄질 하나님의 신적 현실이다.

셋째, 한반도 평화통일은 형제 사랑, 이웃사랑, 원수사랑을 실천하는 과업이다. 북한은 우리의 형제이며, 이웃이며, 그리고 원수이기도 하다. 핵무장을 호언하며 남한을 위협하는 북한정권을 볼 때마다 과연 저런 북한이 평화통일 대상이 될까라는 의심에 빠진다. 핵무기로 무장한 북한을 미국 핵우산으로 제압해 북한을 굴복시키려는 세력의 오기와 호언장담을 볼 때마다 우리는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의 무릎이 흔들림을 느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남북한 정부당국자들보다 훨씬 더 고결한 하나님 나라 시민들로 평화의 사도들이다. 북핵은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와 평화통일 운동에 의해 영구불능이 된다. 하나님은 형제사랑, 이웃사랑, 그리고 원수사랑을 위해 목숨 바쳐 기도하는 성도들의 하나님이시다.



김회권 교수 / 숭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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