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본에 면죄부"... '굴욕적 외교' 비난

"정부가 일본에 면죄부"... '굴욕적 외교' 비난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3년 03월 10일(금) 13:19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의 상징인 원폭돔 건물.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가해기업 대신 국내 재단이 기부금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겠다는 방안을 두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 6일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기업의 배상 책임과 관련 국내 기업 16곳의 출연 자금을 활용해 피해자들에게 대신 배상하는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정부는 "강제징용 사건에 대한 대법원판결 이후 일본의 수출규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종료되면서 한일관계가 사실상 방치됐다"면서 "강제징용 피해자 측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한일 양국의 공동이익에 부합하는 합리적 해결방안을 마련을 위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강제징용 피해자·유족 지원 및 피해구제의 일환으로 2018년 대법원의 3건의 확정판결 원고에게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정부의 발표 이후 교계와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정부의 해법안 철회를 촉구하는 항의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회는 7일 '윤석열 정부의 굴욕적인 강제동원 해법을 규탄한다!'를 제목으로 한 성명을 발표하고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문제와 관련 정부의 구상이 "굴욕적인 처사"라고 지적하며 철회를 촉구했다.

NCCK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원용철)는 "윤석열 정부는 터무니없는 안을 발표했다"며 "이는 일본 정부가 시종일관 전쟁범죄 사실을 부정해 왔고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사과를 끝끝내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당사국인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서 일본에 면죄부를 부여하고 역사를 부정한 참으로 굴욕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문제 해결 방안 철회를 거듭 촉구한 NCCK 정의·평화위원회는 "피해당사자들의 고통과 피 끓는 호소에 귀 기울이며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국민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길로 나아가라"며 "이것이 진정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수립하는 유일한 길이다"고 강조했다.

NCCK 정의·평화위원회는 일본 정부의 사죄도 촉구했다. 위원회는 "일본 정부 역시 한반도 불법강점과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들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해야 한다. 일본군성노예제를 부인하고 역사 교과서 왜곡을 공공연히 자행해 온 일본 정부가 뒤늦게 고노담화를 언급하며 마치 할 바를 다했다는 듯이 큰소리쳐서는 안 된다"며 "일본 정부는 지금이라도 불법적인 식민지배로 피해를 입은 모든 이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하고 대한민국 대법원의 판결을 따라야 한다"고 전했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이영훈)은 6일 논평을 통해 우리 정부의 입장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응답을 촉구하며 원론적인 문제해결을 강조했다.

한교총은 "우리는 상호 노력으로 화해와 회복의 문을 열어 일본이 우리에게 끼친 피해를 극복하고 평화와 번영의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며 "한일간 과거사 문제 중 하나인 강제징용 문제의 해소를 위한 정부의 발표에 대해 먼저 일본 정부의 성의 있는 응답을 촉구한다. 정부는 폭넓게 피해 당사자와 국민 의견을 경청하고, 미래 청사진을 진솔하게 설명함으로써 국론 통합을 위해 더욱 노력하기 바란다"고 전했다.

정의기억연대를 비롯한 611개의 단체가 연대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이하 평화행동)은 1464개 단체와 9020명이 연명한 긴급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굴욕감을 주고 인권을 유린당한 일제 피해자들을 불우이웃 취급하며 모욕감을 안기는 2차 가해를 자행했다"고 비판하며 "대한민국 헌정사에 본말이 전도된 백기투항 망국적 외교참사이며 제2의 국치일로 기록될 것"이라고 개탄했다.

아울러 평화행동은 △반인권, 반헌법, 반역사적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안 폐기 △피해자 무시 졸속협상, 윤석열 정부 굴욕외교 규탄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사죄하고, 전범기업 배상 등을 요구하고 범국민 서명운동을 진행한다.

장신대 이치만 교수(역사신학)는 "국가의 존엄이라고 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상호 이해와 신뢰의 관계로 발전시켜야 하는데, 정부는 우리 국가의 존엄을 멸시하고 혐오하고 우습게 보는 일본정부에 저자세로 일관하는지 안타깝고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국가의 존엄이라는 차원에서 정부의 해법안은 상당히 아쉽고 무엇보다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신앙의 선배들은 우리의 존엄을 스스로 지켜내기 위해 3.1운동에 앞장섰다"면서 "신앙의 선배들처럼, 하나님이 주신 존엄이 훼손된다면 기독교인은 양보하고 참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대항해야 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은 지난 1997년 고 여운택, 신천수 씨가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신일본제철(현 하니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 및 미지급 임금 지급 소송을 제기하는 것으로 시작됐으나 2003년 패소했다. 이후 2005년 피해자 5명이 국내 법원에 같은 취지로 소송했지만 1·2심에서 계속 패소하다가 마침내 2018년 국내 대법원은 일본 전범 기업(일본제철과 미쓰시비중공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일본 기업은 배상을 이행하지 않았고, 한국정부가 한일양국기업의 자발적 출연으로 재원을 조성해 판결금을 지급하자는 방안을 거절하고 수출규제와 지소미아 종료를 통보하는 등 보복조치로 대응했다.
최은숙 임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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