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은 컴퓨터인가 - 잘못된 종말론 비판(1)

666은 컴퓨터인가 - 잘못된 종말론 비판(1)

[ 알기쉽게풀어쓴교리 ] 48. 희망의 기독교 종말론(6)

김도훈 교수
2023년 03월 09일(목) 10:11
잘못된 종말론 현상으로 교회는 물론이고 사회도 혼돈과 무질서를 경험했었다. 그만큼 잘못된 사이비 종말론은 해악이 크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성경과 교리의 왜곡과 오해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그래서 잘못된 신앙을 갖게 한다. 그러므로 사이비 종말론을 냉정하게 비판 평가하고 바른 종말론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먼저 지적하려는 것은 666에 관한 주장이다. 666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근거로 한 것이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계13:16-18). 이로 보아 666이 적그리스도의 숫자인 것만 큼은 분명하다. 문제는 누가 666이냐 하는 점이다. 요한의 의도로 보아 컴퓨터나 바코드나 베리칩 혹은 QR코드를 666으로 해석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요한이 666을 말할 때 일차적으로 기독교를 박해하던 당시의 로마 황제를 염두에 두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즉, 사람을 염두에 두었다는 말이다.

666은 결코 기계나 컴퓨터, 혹은 컴퓨터 기반의 기호나 표시가 아니라 '사람의 수'임에는 틀림없다. 요한은 그 666인 적그리스도를 짐승으로 비유하면서 666은 '사람의 수'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고대 헬라인이나 히브리인들은 숫자 대신에 알파벳을 쓰는 경우가 흔했다. 숫자 1, 2, 3… 대신에 각각 α, β, γ…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네로 황제 이름의 철자를 숫자로 치환하여 합하면 666 혹은 616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할 것은 고대 교회에서는 꼭 666만 적그리스도의 수가 아니라 616도 적그리스도의 수로 간주 되었다는 점이다. 요약하면, 성경의 666은 '숫자의 합'이 666이거나 616인 '사람 이름을 구성하는 알파벳'의 조합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계나 바코드 자체를 666이라고 보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

만일 컴퓨터 바코드나 베리칩이 666이라고 한다면 그들의 주장에는 모순이 생긴다. 꼭 이마나 손에 새겨야만 지옥 가고, 새기지 않고 그냥 사용하면 괜찮다는 모순이다. 만일 바코드가 666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라고 가정해보자. 이마나 손에 새겨 넣으면 지옥 가고, 새기지 않고 이용한다면 지옥에 안 가는 것인가? 그들의 논리대로 하자면 새기든 새기지 않든 그것을 사용하면 이미 잘못된 것이다. 어떤 경우든 적그리스도에 이용되는 것이고 동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바코드를 사용하지 않으면 물건 매매가 불가능하다. 슈퍼에서 작은 과자 하나 사더라도 바코드가 찍혀있다. 아마 그들도 오늘날 분명히 이 바코드를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바코드를 이마나 손목에 새겨서는 안 된다는 그들의 논리는 바코드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비켜나가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 분명한 것은 바코드나 컴퓨터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그것을 악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나쁜 것이지, 바코드나 컴퓨터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사이비 종말론자들의 또 하나의 잘못은 오늘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재앙적인 사건들을 곧바로 성경의 숫자나 상징이나 종말적 사건에 대입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666은 컴퓨터 바코드이며, 열 뿔은 EC (혹은 EEC) 공동체의 10개국(EC의 후신인 EU는 현재 27개국)이며, 첫째 대접의 재앙은 화학전, 둘째 대접은 페르시아만 석유 유출 사건, 셋째는 함포 사격으로 인한 피바다, 넷째 대접의 재앙은 바그다드의 폭격기 포격 사태로 연결하여 지금이 일곱째 대접을 쏟았으니 곧 종말이 닥친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과 더불어 성경의 날짜나 상징적인 수의 계산을 토대로 하여 '예수님의 재림은 언제, 언제다'라고 계산해 내는 작업을 한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자의적이다.

사실상 성경의 종말 예언과 오늘날의 사건들을 일치시키려고 한다면 언제나 할 수 있다. 성경은 종말의 징조를 언제 언제의 사건이라고 달력의 날짜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다만 기근, 전쟁, 내란, 거짓 선지자의 출현, 천체와 지구의 이상 현상, 자연계의 붕괴, 악질, 지진이 있을 것이라고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재앙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난 사건들이다. 페스트 발병이나 1차 대전, 리스본 대지진 등이 일어났을 때 종말이 왔다고 외치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렸지만 잘못된 것으로 판명 나고 말았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종말의 징조가 없다거나, 성경의 진술들을 믿을 수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함부로 오늘날의 사건과 성경의 말세의 징조들을 직접 연결하여 마치 지금이 곧 휴거나 종말이 일어날 것처럼 공포를 조장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김도훈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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