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사람들

잊지 못할 사람들

[ 목양칼럼 ]

김성기 목사
2023년 03월 03일(금) 09:33
1992년 처음으로 필자에게 연결된 단독목회 현장은 담양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부임해 처음 예배드릴 때의 상황을 잊을 수 없다. 작은 시골집의 아랫방에 교인 3명과 필자의 가족 4명이 모인 것이다. 단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모습이었고, 이런 형태의 목회를 위해 준비된 것도 없었다. 지금까지 도시의 큰 교회에서 사력을 다해 배운 것들이 무용지물이었고, 이런 무기력함은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많은 교인들과 멋진 예배당에서 지역을 복음화하는 꿈을 품었던 필자에겐 교인도, 예배당도, 미래를 준비할 다음세대도 없었다. 앞으로의 일만 생각하면 먼저 절망감이 엄습했다.

그 동안 소명이라고 여겼던 멋진 사역을 뒤로하고 소위 사명감으로 마을 전도를 시작했다. 일단 예배당이 필요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주변 땅도 보러 다녔다. '예배당이 아닌 골방으로는 사람들을 초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교인을 보내주셨다. 새 가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골방으로 찾아와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필자는 더 간절히 예배를 위한 공간을 찾아 다녔고, 마음에 드는 장소가 나오면 시간이 날 때마다 현장을 방문해 기도했다.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이었다.

그러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땅이라는 감동이 느껴지는 곳을 찾게 됐고, 주인이 살고 있는 순천에 가서 사정을 얘기하며 매매를 제안했다. 가톨릭 신자였던 주인은 교회에 땅을 파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고, 순조롭게 계약은 성사됐다. 하지만 당장 계약금조차 없던 필자로서는 교인들과 함께 기도하며 기다릴 뿐이었다. 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한 시간이 다가올수록 눈물이 앞을 가렸다. 마음 속으로 '시골 교회 사역은 나와 맞지 않고, 지금의 절망적 상황 역시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야. 난 언제든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어 '그런데 내가 실패하고 떠나면 교회도 없이 남겨질 영혼들은 어떻게 하지' 고민하게 되면서, 시작한지 얼마 안 된 담임목사였지만 목회 인생과 생명을 걸고 작정기도를 했다.

하나님이 여기로 보내셨으니 방법을 찾아 달라고 떼도 쓰고, 소리도 지르고, 그 땅에 가서 펑펑 울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침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신실한 크리스찬 부부와 연결이 된 것이다. 지금은 장로와 권사가 된 부부는 당시 시내에 있는 아파트를 처분한 돈을 필자에게 건내며 원하는 땅을 구입하라고 했다. 상상할 수도 없는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됐다.

필자는 절망의 순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확인시켜 주신 장로님 부부를 기억하며, 30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명절마다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있다. 필자는 확신한다. 하나님은 연약한 목회자의 외침을 거절하지 않는 분이시다. 필자의 목회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곳이기에 당시 함께했던 교우와 주민들이 자주 생각난다. 고마운 마음이 든다.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지만 교회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던 주민도 계셨다. 그 분들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고, 그 분들을 위해 평생 기도할 것이다.

김성기 목사 / 여수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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