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의 세계화와 유대 분파 형성

구약성경의 세계화와 유대 분파 형성

[ 통으로읽는성경 ] 7.'통(通) 신구약 중간사 400년' 이야기

조병호 목사
2023년 02월 22일(수) 09:56
유대의 마카비 전투 승리를 묘사한 루벤스의 작품.
#유일신을 믿는 유대와 헬라제국이 충돌 … 로마제국의 등장

'통(通) 7트랙'의 네 번째 트랙인 '중간사 400년'은 '말라기'와 '마태복음' 사이의 기간으로 페르시아 멸망 이후 헬라,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가 들어 있다. 이 시기는 하나님의 침묵 속에 '구약성경의 세계화와 유대 분파가 형성'되는 상황이다. 하나님은 이 기간을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위한 준비 기간'으로 사용했다.

'중간사 400년'은 크게 네 시기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페르시아 제국이 멸망하고 헬라 제국이 등장한 시기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혼혈족 사마리아인으로 만든 520년간 상(上)아시아의 주인이었던 앗수르 제국이 바벨론 제국에게 멸망했고, 바벨론 제국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70년 만에 페르시아 제국에게 멸망했다. 구약성경 39권 가운데 7권(다니엘, 학개, 스가랴,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말라기)이 페르시아 제국이 유대를 통치할 때 기록된 책이다. 그만큼 페르시아 제국과 구약성경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말라기에 등장하는 총독도 페르시아 제국이 유대에 파견한 총독이다. 그런데 마태복음을 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는 유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는 '중간사 400년' 동안 제국 역사에 큰 변동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페르시아 제국이 헬라 제국에 멸망하는 제국의 변동 가운데 유대는 페르시아 제국에 이어 헬라 제국의 통치를 받는 식민지가 된다.

유대가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를 받았을 때에는 종교적 자유를 누리며 세금만 꼬박꼬박 잘 내면 됐다. 그런데 헬라 제국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되면서 유대 백성들이 체감하게 된 가장 큰 변화는 헬라 제국에 세금을 내야 하는 것 외에, 헬라 사상인 헬레니즘을 강요받게 됐다는 것이다. 헬레니즘은 그리스의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접목한 것으로 유대의 헤브라이즘과 맞서는 서양의 양대 사상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유일신을 믿는 헤브라이즘의 나라 유대와 헬라화를 강조하는 헬라 제국과의 충돌이 불가피해졌음을 의미한다.

둘째, 헬라 제국의 유대 통치 전반기다. 드넓은 헬라 제국은 알렉산더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네 명의 장수에 의해 분할 통치된다. 이때 유대를 먼저 통치하게 된 나라가 이집트 헬라 제국의 프톨레미 왕조다. 프톨레미 왕조는 122년간 유대를 통치하며 유대인들이 종교적 신념과 관습을 지킬 수 있도록 관대한 정책을 펼쳤기에 이 시기에 유대는 평화와 안정을 누렸다. 프톨레미 2세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관장인 데메트리우스 파레리우스와 대화를 나누던 중 도서관 장서를 50만 권까지 확대하기로 결정하면서 유대의 모세오경을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번역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소장하기로 한다. 이 일은 모세오경이 세계화되는 역사적인 계기가 됐다.

셋째, 헬라 제국의 유대 통치 후반기이다. 122년간 이집트 헬라 제국의 통치를 받던 유대는 시리아 헬라 제국의 셀루커스 왕조의 지배로 넘어간다. 시리아 헬라 제국은 미리 유대 지도부와 약속한 대로 유대에 3년간 세금을 면제해준다. 그런데 시리아 헬라 제국이 신생 국가인 로마와 전쟁을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180도 바뀌게 된다. 전쟁에서 패배한 시리아 헬라 제국은 로마에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물어줘야 했다. 그러자 시리아 헬라 제국은 그들이 다스리는 모든 식민지로부터 무리한 세금을 거뒀고,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의 헌금까지도 탈취했다. 그리고 로마에 대한 분풀이로 유대에 강력한 헬라화를 강요하며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 제우스 신상을 세워놓고 우상에 절하게 하고 성전 안을 돼지피로 물들이는가 하면, 할례를 금지하고 제사장들을 죽이며 안식일과 율법도 지키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유대에서는 시리아 헬라 제국에 대항하는 '마카비 혁명'이 일어났다. 시리아 헬라 제국은 유대에 정규군을 보내 마카비 혁명을 제압하려 했으나 유대는 게릴라전으로 끝까지 저항해 마침내 유대 땅에서 시리아 헬라 제국을 몰아낸다. 이때 예루살렘 성전을 청결하게 한 후, 이날을 기념하여 만든 명절이 '수전절'이다. 마카비 혁명 이후 혁명 세력들이 뜻을 달리하면서 유대는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로 나눠진다.

마카비 혁명을 성공시킨 하스몬 가문은 '하스몬 왕조'를 세워 80여 년 동안 유대를 통치한다. 그런데 하스몬 왕조는 대제사장이 왕을 겸직하므로 제사장 나라 법을 어긴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하스몬 왕조의 알렉산데스 야나이우스 왕이 대제사장을 겸직하면서 과부가 된 형수와 결혼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유대 백성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데스 야나이우스는 왕과 대제사장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결혼식을 진행했고 결혼식에 올리브 가지를 던지며 반대를 표한 바리새파 사람들 800여 명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기까지 했다. 결국 이 문제로 인해 제사장들이 주축이 되는 종교 귀족들인 사두개파와 경건한 평신도 대표들이라 할 수 있는 바리새파가 더욱 극명하게 대립한다.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는 로마 제국의 통치하에서도 그대로 계속되는데 여기에 로마에 저항하는 젤롯당까지 출현하게 된다.

넷째, 헬라 제국이 멸망하고, 로마 제국이 등장한 시기이다. 하스몬 왕조를 세워 80년간 독립을 유지하던 유대는 내분이 생기면서 결국 다시 로마 제국의 식민지가 된다. 그런데 로마 제국은 마카비 혁명을 일으켰던 유대의 역사를 교훈 삼아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로마는 에돔족인 헤롯 가문을 유대의 분봉 왕으로 삼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축하게 함으로 성전을 로마의 통치 도구로 전락시킨다. 로마는 유대로부터 세금은 거두어가되 예루살렘 성전은 존중한다는 표시로 로마 총독과 군단은 가이사랴에 주둔시켰으며 유대의 자치 지도부인 산헤드린 공회도 이전 제국들처럼 존중해 주었다. 이렇게 유대가 로마의 식민지가 되고,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제국 전역으로부터 세금을 철저히 거두기 위해 호적을 명령할 때 예수님께서 천사들과 목자들의 기쁨 속에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다.

조병호 목사 / 성경통독원 대표·하이기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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