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웃들의 벗, 황광은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식 열려

가난한 이웃들의 벗, 황광은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식 열려

19일 3시 영암교회 본당 3층서 개최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3년 02월 12일(일) 23:52
대광초교 어린이들에게 설교하시는 황광은목사
제주도 한국보육원 당시 보육원 아이들과 함께
한국보육원 당시 황광은 교육철학이 담긴 표지판
73편의 황광은 동화집들
1960년 크리챤신문 창간호(편집인:황광은)
어린이잡지 새벗 편집장으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고 우신(牛臣) 황광은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식이 오는 19일 오후 3시 영암교회(유상진 목사 시무)에서 개최된다.

이번 기념식은 '가난한 자와 병든 영혼을 위하여 살고 죽은 예수의 참 제자'로 살아왔던 황 목사의 삶과 신앙을 재조명하고, 신앙의 유산을 계승해 나가기 위해 마련됐다.

예배는 유상진 목사의 인도로 김충렬 목사(영세교회 원로)가 기도하고 조유택 목사(남대문교회 원로)가 설교, 이수영 목사(전 새문안교회 담임)가 축도한다.

황 목사를 추모하며 회고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김종희 목사(경신중·고 명예교목), 최봉균 선생(당시 삼동소년시 장형), 엄문용 장로(해바라기 문인회 회장), 손관식 장로(전 대광초 교감), 백도웅 목사(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임광진 장로(전 재일 한국YMCA 총무) 가 참석해 황 목사의 교훈을 기리고 추억 속에 남아있는 이야기들을 전한다.

김형석 교수(연세대 명예) 최효섭 목사(아동문학가) 김철민 장로(영암교회 출신 재미 가정사역자) 김성호 목사(협성대 명예교수) 정선혜 평론가(아동문학)는 영상으로 황 목사를 회고하며 애틋한 마음을 전할 예정이다.

황광은 목사는 1923년 2월 25일 평북 용천에서 3대째 기독교 가정을 지켜온 황동성 장로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이름 앞에는 '목회자이자 웅변가' '아동문학가' '사회사업가' '아이들의 동무' '고아들의 형님' '목회자의 벗' '가난한 자의 이웃' '소년단 간사장' 'YMCA 간사''기독교교육협회 간사' '난지도 소년시 시장' 등 다양한 수식어와 직함이 붙을 만큼 한국교회와 사회에서 여러 활동을 했다.

황 목사는 가가와 도요히코의 소설 '사선을 넘어서 ' '한 알의 밀' 등을 읽으며 큰 영향을 받았는데 가가와 목사의 가난했던 소년 시절, 폐병과의 투쟁으로 점철된 그의 청년 시절, 예수의 정신으로 돌아가 가난한 자와 함께 살려 한 그의 이념, 그리고 웅변가로 유명했던 가가와 목사의 삶이 황 목사에게는 생의 한 목표가 되었다.

그는 홀로 서울로 상경해 '향린원'을 찾아 8년 동안 고아들과 함께 굶고 헐벗으면서 '거지들의 형님'을 자처했다. 광복 후 한국신학대학에 입학해 졸업 후에는 서울 중앙YMCA소년부 간사로서 봉사하면서 종로 YMCA 지하실에서 유랑하는 소녀 20여 명을 모아 밤마다 공부를 가르치고 낮에는 구두닦이를 시켜 자립을 도왔다.

전쟁 발발 후에는 제주도 한국보육원 옆에 움막집을 짓고 고아들의 벗이 되었고 1952년 서울 난지도에 한국보이스타운(삼동소년촌)을 건설해 고아와 불우 청소년들의 안전한 삶을 지원했다. 본보 1955년 5월 15일자에 '한국동란으로 전쟁고아가 된 어린이들이 한 섬에 모여 한 시를 구성하여 자기들의 자치제로 움직이고 있는데, 지난 12월 제3대 시장 취임을 거행하였다.…'는 기사가 게재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예술에 소질이 있었던 황광은 목사는 아동문학에도 열정을 쏟았다.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1957년 '빛을 따른다'는 의미를 담아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문학을 이해하는 교계인사들과 '해바라기회'를 창립하고 1년에 작품 한 편 이상씩 발표하기로 했고 해바라기 이름으로 동화집 한 권씩을 내기로 했다. 황 목사가 남긴 작품은 '날아가는 새 구두' '노래하는 섬' '호르라기 부는 소년' '춤추는 열두 공주' '숲 속의 할머니' 등이 있다.

그는 새문안교회 부목사로 재직하는 동안 크리스찬 신문을 창간하고 어린이잡지 '새벗'편집장, '기독교교육'주간, 1966년부터 3년간 기독교교육협회 간사를 역임하며 출판과 강연으로 기독교문화 창달에 앞장섰다.

새문안교회에서 1956년부터 1960년까지 5년 동안 사역을 마친 황 목사는 대광고등학교 교목, 대한소년단 간사장을 마친 1961년 영암교회에 부임해 10년간 사역하다가 1970년 7월 15일 향년 47세에 지병인 심장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황 목사는 영암교회에서 사역하는 10년 동안 전세집을 전전하며 안정된 생활을 해본적이 없다. 부교역자보다 사례비를 적게 받기도 했다. 평생 가난한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 황 목사의 유산은 다 떨어진 양복과 닳아버린 신발 정도다. 가장 가난하게 산 사람, 황광은 목사는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주위 사람들에게 "괜찮아, 다 나았어" 하며 환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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