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우리에게 공포인가 희망인가?

종말, 우리에게 공포인가 희망인가?

[ 알기쉽게풀어쓴교리 ] 44. 희망의 기독교 종말론(2)

김도훈 교수
2023년 02월 08일(수) 14:41
종말,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비극인가, 희망인가? 혹시 지옥, 전쟁, 파국, 적그리스도, 자연재앙 등이 떠오르지는 않는가. 과거 교회는 일부 그렇게 가르치기도 했다. 3차 전쟁이니, 핵전쟁이니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컴퓨터와 기술의 발전이 666으로 명명되고, 각종 무시무시한 질병과 재난이 마치 종말의 모든 것인 양 소개되었다. 공포와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치는 사건들을 계시록 예언의 성취처럼 연결하여 공포감을 조성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아마겟돈 전쟁이라며 공포에 떨었고, 코로나, 에볼라, 사스 등의 질병에 말세에 나타날 역병이라며 불안에 떨었고, 컴퓨터, 바코드, RFID, 베리칩, QR코드가 혹시나 적그리스도의 징표가 아닐까 하며 두려워 떨었다. 한때 주인공 한둘 남고 인류가 망하는, 종말에 관한 영화나 소설들이 횡횡하기도 했다. 과거를 돌아보면 알 수 있듯, 종말 공포가 좀비처럼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현상적으로 종말은 언제나 공포와 불안과 비극이었다. 종말의 날은 무자비하게 보복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날인 것처럼. 그래서 종말이 온다는 사이비 종파의 허언 앞에 공포로 떨기도 했다. 혹시 내가 휴거하지 못하고 지상 7년 대환란에 남겨질까 봐. 도대체 왜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사설(邪說)에 넘어가 갑작스럽게 세상이 망할 것처럼 두려워하는가.종말을 단순히 비극과 공포와 저주로만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극이다. 기독교 종말론은 파국론이 아니라 희망론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많은 학자들이 종말론을 '기독교의 희망론'이라 부른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성경은 역사의 마지막을 파국이라고 묘사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세계의 창조로 시작하는 성경이 마침내 새하늘과 새땅의 이야기로 마치는 것을 보라.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계22:1~5).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인가! 그 세계를 영원히 누릴 수 있다니. 그것도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직접 대면하여 만나는 세계라니. 우리에게 종말은 비극일까, 아니면 희망일까. 한마디로 희망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는 우리에게는 종말은 결코 비극이나 공포가 아니다. 오히려 희망의 우주 드라마다. 반전과 또 반전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가슴 벅찬 감동 드라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종말은 악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최종적 승리, 새 하늘과 새 땅을 선포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 세상에 어떤 악이 존재하여도 악의 종말은 분명하다. 악과 사탄은 최종적 승리자이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을 것이다. 하나님은 만유 안에 만유가 되실 것이다.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다.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종말은 우리에게도 희망과 승리의 순간이다.

둘째, 마지막 대재앙을 말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의 의도는 대재앙 자체를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 고난받는 그리스도인들의 최종적 승리와 희망을 말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요한계시록〉의 의도가 세상의 종말에 있다고 착각한다. 마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록》 같은 정도의 책으로 말이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했을 때, 그 목적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함이었다. 요한은 수많은 고난과 고통과 순교를 목격하였다. 거대한 사탄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죽고 또 죽어갔다. 요한은 그들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싶었다. 이게 끝이 아니라고 말이다. 악이 아무리 대단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이다. 그는 이미 하나님의 최종적 승리를 미리 보았기 때문이다. 순교자들과 셀 수 없는 흰옷 입은 무리들이 주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미리 보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승리하니, 조금만 더 인내하라고, 이 환난을 견디면 생명의 면류관과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을 것이라고, 두려워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승리를 믿으라고. 요한의 메시지는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종말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지키라고 권고한다.

셋째,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의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내어준 분이시기 때문에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무궁토록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최후 심판의 순간에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7~39). 종말은 우리에게 공포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희망이다!

김도훈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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