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섭섭병'

목회자의 '섭섭병'

[ 목양칼럼 ]

최송규 목사
2023년 02월 08일(수) 15:53
몇 해 전, 지방에서 친구 목사들과 여가를 보내고 있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한 장로님께 전화가 왔는데 그만 받지 못 했다. 잠시 후 전화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으나 깜박 잊고 말았다. 다음날 교회에서 장로님은 언짢은 표정으로 물으셨다, 왜 전화를 받지 않았느냐고. 나는 벨소리를 듣지 못해 죄송하다고, 바빠서 미처 다시 전화드리지 못 했다고 정중히 사과 드렸다.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단순한 일이었다. 하지만 은퇴를 앞둔 장로님께선 목사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기셨다. 그 이후로 장로님과의 관계는 소원해져 갔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나름 노력을 해봤지만, 한번 서먹해진 관계는 좀처럼 되돌리기 어려웠다. 교회 분위기는 점점 삭막해졌다. 결국 장로님은 은퇴를 하시면서, 교회 근처에 다른 목사와 개척교회를 시작하셨다.

그런데 요즈음 나에게도 섭섭한 마음이 자꾸 든다. 과거에 느끼지 못 했던 감정이다. 교우들과의 관계, 자녀와 아내와의 관계, 동료 목사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이전엔 아무렇지도 않았던 말들이 이젠 상처로 다가온다. 애써 아닌 척해도 표정과 마음을 숨기기 어렵다. 책에서는 은퇴 직전이 소외감을 느끼기 가장 쉬운 시기라고 한다. 그제야 장로님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이러한 섭섭함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심리적, 신체적으로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변화다.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목회자만은 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어선 안 된다. 목회자의 '섭섭병'은 목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섭섭한 감정은 관계에 오해를 가져온다. 교회 내 행정, 당회 내 관계, 성도와의 관계 등 모든 곳에서 섭섭함은 불필요한 오해를 만든다.

목회는 성도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목사의 삶은 성도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의 '섭섭병'이 성도와의 관계를 막는다. 성도들의 입장에선 목회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목회자의 '섭섭병'은 목양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이제는 섭섭한 마음이 들 때면, '아, 나이가 들면서 섭섭병이 찾아왔구나'라고 생각한다. 과거와 다른 이 감정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섭섭병'을 치료하기 위해선 긍정적인 사고와 자기객관화, 사람들과의 모임이 필요하다.

섭섭한 마음이 찾아올 때는 우선, 나 스스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신체적으로 호르몬의 변화가 찾아오기 때문에 기분이 쉽게 우울해지거나 신경이 예민해질 수 있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이 퉁명스럽게 변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늘 감사하고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그리고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살펴본다. 지금 내가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생각해본다. 삶의 의욕이 사라지고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는 피로가 누적되었거나, 환경적인 상황이 우울증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본다.

무엇보다 목양지가 아닌 곳에서 모임을 적극적으로 갖는다. 별로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거나 웃고 싶지 않더라도 모임에 부지런히 참석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공감하고 웃고 떠드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섭섭병'이 목회의 마무리를 힘들게 하지 않도록, 건강한 정신과 마음을 가꾸는 데 힘쓰자.

최송규 목사 / 예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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