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광주 나환자촌을 방문한 선교사의 기록

1920년 광주 나환자촌을 방문한 선교사의 기록

[ 선교여성과 교회 ] 전남 지역의 여전도회 ⑥

한국기독공보
2023년 01월 11일(수) 13:56
총회 사적 제6호인 애양원 및 애양원교회는 1909년 설립됐다. 오웬 선교사를 문병 가던 포사이드 선교사가 길에서 만난 한센병 환자를 광주로 데려와 치료하면서 출발한 광주나병원이 애양원의 전신이다. 이후 많은 나환자들이 광주 봉선동에 모여들자 더 넓은 땅을 찾아 1926년 이동한 곳이 현재 위치인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다. 설립자 윌슨 선교사는 병의 치료를 넘어 환자들이 자립해 가정까지 이루기까지 도움을 제공했다. 윌슨 선교사가 조성했던 한센인 마을은 지금도 애양원교회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마주하게 된다. / 한국기독공보 DB
미국 부인조력회 창설자 할리 윈스보로가 1920년 한국을 방문했다. 1937년 장로교여성사역위원회가 펴낸, 할리 윈스보로의 '동양 방문기'의 일부 내용이다(A visti to the Orient, Yesteryears by Hallie P. Winsborough).

# 학교동료

전주에서 매티(Mattie Tate)와 새디(Sadie Buckland)를 만나게 돼서 너무 반가웠다. 그들은 내 모교인 미주리주 풀턴에 있는 교단 대회에서 운영하는 대학의 동문이다. 매티는 1892년 우리 교회가 한국 미션을 시작할 때 개척자중 한 사람이었다. 한국 여성을 위한 그녀의 사역은 대단한 성과를 이루고 있었다.

새디는 1908년에 한국으로 와 1936년에 은퇴하여 그녀의 자매 윌리엄 도빈스(William. Ray Dobyns)와 함께 살 때까지 전도자로서 한국을 섬겼다. 성공적으로 섬겼지만 그해 12월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나라로 갔다. 그녀의 사역이 그렇게 끝맺음 됐고, 에녹과 같이 하나님이 그녀를 거두지 아니하였다.

이 친구들을 방문했던 일과 어스틴(Austin)양이 사는 전주의 '색시 집' 방문은 이번 여행 중 가장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나중에 우리는 중국에서 사역중인 두 동문을 더 방문할 예정이었다. 서첸에서 교사로 있는 맥커첸(Mada McCutchen) 양과 수초우와 기앙인의 두 병원에서 행정을 총괄하는 네즈빗(Sade Nesbit) 양이다.

우리의 사랑하는 모교는 영양실조로 몇 년 전 죽기 전에 21명의 선교사들을 국내외로 파송했다. 선교사들의 많은 자녀들은 아주 어려운 여건에 있는 교회 처소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섬겼다.

# 광주 나환자촌

어느 쌀쌀한 11월 아침, 광주에서의 아주 강렬한 기억이 있다. 우리는 나환자촌을 돌보고 있는 윌슨(Wilson) 의사를 방문했다. 나환자촌의 문을 열기 위해 잠시 멈췄을 때, 문 양 옆에 쌓인 더러운 누더기를 볼 수 있었다.

운전해서 들어가려는 순간 한 여자의 머리가 누더기 더미 가운데서 불쑥 나타났다. 사람들이 그 누더기를 덮고 있던 것이었다. 4명의 여성들이 이 문 옆에서 추운 밤을 지내야 했고, 아침이 되자 따뜻한 곳으로 들여보내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한 여성은 손가락이 닳아 없어져버린 손을 들고, 윌슨 의사에게 들여보내 줄 것을 간청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같은 경험을 매일 반복하고 있습니다." 윌슨은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이들의 요청을 거절할 때 그것이 얼마나 가슴에 메이는 일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이미 환자촌의 모든 공간이 채워져서 환자들은 음식을 나누어 먹기에도 부족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들을 받아들이면, 다른 이들이 똑같이 그곳에서 기다릴 텐데 어찌 하겠습니까?"

우리는 비용을 직접 부담할 테니, 최악의 상태에 있는 두 명을 받아달라고 간청했다. 우리가 운전해 들어가는 동안 매일 아침 그곳에서 다른 이들이 애걸할 것을 생각하면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나환자촌 안에서 환자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돌아다니는 모습을 봤다. 없어진 얼굴, 문드러진 손과 발, 외면하고 싶었던 그들의 모습이 거의 잊혀졌다. 일부 남자들은 벽돌을 굽는 곳에서 일하며 새 건물을 짓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우리는 작은 채플로 들어갔다. 환자들이 예배 드리기 위해 모여 있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과 환자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전염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로 보였다.

나환자들은 이곳에서 생활할 수 있어 운이 좋다고 행복해했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도 즐거웠다. 그러나 만약 본국에 있는 성도들이 이 나환자촌과 밖의 모습을 봤다면, 문 옆에서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는 환자들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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