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은총, 일상의 감사 - 행복의 조건들(1)

일상의 은총, 일상의 감사 - 행복의 조건들(1)

[ 알기쉽게풀어쓴교리 ] 40. 긍정과 은총의 삶의 신학(2)

김도훈 교수
2023년 01월 05일(목) 07:12
새로운 한 해가 또 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어제 그대로다. 다만 달력이 바뀌었을 뿐이다. 어제의 수첩, 아직도 여백이 많은데 오늘부터 쓸 수 없어 새해다. 그러나 새해는 달력을 바꾸고 수첩을 바꾼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바꿔야 온다. 오늘이 어제와 다른 것은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불을 껐다 켜듯 마음을 껐다 켜야 새날이다. "꼬여있던 매듭도 풀고, 걸려 있던 가시도 빼내고, 내일을 위해 어제를 지워야" (오보영) 새날이다. 미움은 끄고 용서는 켜야 새날이다. 불안과 절망은 끄고 용기와 희망은 켜야 새날이다. 불평과 불만은 끄고 찬송과 감사는 켜야 새날이다.

새날에 우리는 행복을 기원한다. 어제의 슬픔과 고통을 잊고 행복이 시작되기를 온 마음으로 기원한다. 인간의 본능은 행복에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래서 어느 보고서는 "행복은 우리 각자가 가꿀 수 있는 마음의 상태"라고 정의했나 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잘 살고자 한다(good life). 잘 살고자 하는 의지는 "기쁨으로의 의지"(칼 바르트)이며 "행복에의 의지"다. 이쯤에서 이렇게 질문해보자. 행복이란 무엇이며 행복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이 아마 우리에게는 우문(愚問)일지도 모른다. 행복의 근원과 조건은 언제나 초월적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복과 은혜와 평강의 참 근원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민6:24-26). 참된 행복 신학을 추구했던 어거스틴이나 토마스 아퀴나스도 결국은 이렇게 답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최근 들어 인간의 행복과 웰빙을 연구하는 학문이 등장하였다. 이를 통칭하여 긍정심리학이라 부른다. 인간이 행복해지고 웰빙한 삶을 살려면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여러 행복의 조건들을 제시한다. 용서, 화해, 희망, 용기, 고난 등 눈여겨 볼만한 주제들을 다룬다. 심지어 기도와 감사와 은혜와 영성을 주제로 하기도 한다. 기독교의 핵심 가치관과 덕목들을 세속학문인 심리학이 다루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에 대한 소개는 뒤로하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필자가 넌지시 던져보는 화두는 일상의 행복에 관한 것이다. 제목이 말하듯, 평범한 하루하루의 일상의 삶을 은총으로 생각하고,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는 것이 행복의 요건 중에 하나가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며 행복해하는 한 시인의 시를 여기에 옮겨본다. "무거운 눈꺼풀 비비며 맞이하는 어둠이 벗겨지기 시작한 신 새벽 반복되는 일상의 창을 열어 낯익은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오늘은 내게 선물입니다/습관처럼 투박한 머그잔에 커피를 타들고 희미한 갓등 올라탄 먼지 손끝에 묻히며 계절 꽃 목긴 화병에서 은은하게 웃으면 눈가 마음의 주름하나 생겨날지라도 오늘은 내게 선물입니다/생각이 통하는 책장을 넘기고 세상으로 통하는 조간신문을 들추며 파란 불꽃 위에서 된장국 끓고 밥물 오르는 냄새 집안을 감돌면/채널 고정한 일기예보 쫑긋해지는 오늘은 내게 선물입니다/변함없이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 언제라도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 기쁨과 행복, 슬픔과 아픔 함께 나누며 부족함 채워, 슬픔과 아픔 함께 나누는 오늘은 내게 선물입니다" (김설하).

늘 반복되는 일상, 때로는 일탈하고 싶은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삶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평범한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것은 선물이며 은총이다. 김남조 시인도 이렇게 고백하였다.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 쯤이다." 그러니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감사하며 살자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면하였다. "범사"라는 말에는 "고난 중에도 감사" 뿐만아니라 "평범한 일상에도 감사"가 포함된 말일 것이다.

기독교 교리들은 대부분 감사를 구속사적으로 풀어낸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사해야 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됨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밀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러한 기본에 더하여 일상의 삶에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은총에도 감사해야 한다. 일상도 하나님의 은총이다.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는 하루가, 그래서 아침에 다시 새로운 시간과 호흡이 주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왜 우리는 병에 걸렸다 나아야 감사하며, 사고와 어려움을 극복하는 기적을 맛보고서야 감사하는가. 건강하고 사고가 없는 평범한 하루가 더 감사하지 않은가. 삶에서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가. 일상이 곧 기적이고 은혜다.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는 것, 새날과 새마음과 새호흡이 매일마다 주어지는 것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생각하는 것, 바로 그것이 행복의 시작이다.

김도훈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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