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라는 이름의 섬

문학이라는 이름의 섬

[ 시인의세상보기 ]

이재훈 시인
2022년 11월 09일(수) 10:00
깊어가는 가을 남해를 찾았다. 문학상을 받게 되어 가는 방문이었다. 상과는 무관하게 평소에 가보지 못한 남해를 찾게 되어 마음은 달떴다. 살다보면 예기치 않은 행운이 찾아올 때가 있으며 뜻밖의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상이라는 것이 그런 뜻밖의 행운이다. 겸연쩍고 부끄러운 마음을 어찌할 바 몰라 남해의 가을에 집중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 내리달렸다. 남해대교를 건너니 너른 바다가 펼쳐졌다.

남해는 금산과 보리암을 품고 있으며 죽방렴과 다도해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남쪽 마을이다. 한때 동양 최대의 현수교라 불렸던 남해대교가 있고, 이순신 장군을 모신 충렬사가 있다. 남해 상주에는 은모래해변이 있는데 금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울창한 송림을 품은 상주은모래백사장은 너무나 아름답다. 무엇보다 남해는 유배지의 마을이다. 서포 김만중이 남해의 노도로 유배를 와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등 한국 최고의 문학작품을 집필했다. 남해 시가지의 중심에는 유배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남해를 방문한 첫 날에는 남해의 아름다움에 반해 남해로 이주해서 살고 있는 후배를 만나 남해시장을 찾았다. 시장에서는 남해야행이라는 문화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부침개와 육전을 사서 먹었다. 시장 골목에 있는 횟집에서 회를 먹었다. 전혀 연고가 없는 남해에 와서 살고 있는 후배 부부의 인생사를 조금 엿들었다. 저녁에는 물미해안도로를 천천히 달렸다. 바닷길을 끼고 있는 섬호마을에 도착하여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다음날 유배문학관에서 벽련항으로 갔다. 벽련마을은 맑은 연꽃이라는 뜻을 가진 작은 포구이다. 그곳에서 낚시배를 타고 노도로 들어갔다. 십여 명이 탈 수 있는 낚시배는 바닷물을 세차게 튀기며 우리를 노도로 안내했다. 문학이라는 이름을 품고 배를 타고 들어가는 마음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노도에 도착하니 '문학의 섬, 노도'라고 쓴 큰 상징조형물이 우리는 반겼다. 문학의 섬이라니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노도는 배를 젓는 노를 많이 생산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노를 젓는 일은 글을 쓰는 일과 다를 바 없다. 젓는 일과 쓰는 일은 모두 온힘을 쏟아내는 일이며 그러다보면 어느덧 목적지에 와있는 것이다. 노도에는 김만중문학관이 있었다. 서포 김만중은 1689년 숙종 15년에 노도로 유배를 와서 불후의 국문소설 '구운몽' 등을 집필하고 56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노도에서 김만중문학관으로 오르는 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남해의 바다는 수평선이 보이지 않고 건너편의 섬이 보였다. 섬과 섬으로 이어지는 남해는 아기자기하고 고요했다.

김만중문학관에서는 문학축전이 열리고 있었다. 정호승 시인이 모성의 힘이라는 주제로 문학특강을 하고, 물미시낭송회에서 낭송퍼포먼스를 하고, 남해의 딸이라 불리는 손심심 김준호 소리꾼 부부가 공연을 했다. 백일장에 참석한 학생들부터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모두 행복한 표정들이었다. 노도에서의 행사를 모두 마치고 다시 남해읍내로 들어왔다. 시장골목의 작은 식당에서 남해에 사는 시인들과 함께 저녁을 함께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남해가 고향인 고두현 시인은 바다를 한낱 풍경으로 보지 않았다.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보세요./낮은 파도에도 멀미하는 노을/해안선이 돌아앉아 머리 풀고/흰 목덜미 말리는 동안/미풍에 말려 올라가는 다홍 치맛단 좀 보세요."('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라고 노래하며 바다를 부끄러움 많은 신부처럼 감각적으로 묘사했다. 그 다음날 우리 일행은 남해 창선에 있는 왕후박나무를 보러갔다.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나무를 오래 바라보았다. 창선에서 늑도를 거쳐 삼천포대교를 건너며 남해의 가장 아름다운 바다를 눈에 가득 담았다. "남도에서 가장 빨리 가을이 닿는/삼십 리 해안 길, 그대에게 먼저 보여 주려고/저토록 몸이 달아 뒤채는 파도/그렇게 돌아앉아 있지만 말고/속 타는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좀 보아요."라고 노래하는 고두현 시인의 싯귀를 직접 목도했다. 문학이라는 이름의 섬을 다녀왔다. 아름다움은 풍경에만 있지 않다. 아름다움은 풍경에 배경으로 서 있는 사람 때문에 더 깊다. 아름다움을 아는 마음들이 모여서 더 깊고 아름다운 풍경이 완성된다.



이재훈 시인/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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