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개혁을 생각하며

한국교회의 개혁을 생각하며

[ 주간논단 ]

차종순 목사
2022년 09월 26일(월) 08:22
요한 칼빈이 장로제도(presbyterianism)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제네바의 개혁자로서 그는 자신의 상황에서 사도 바울의 상황과의 유사점을 찾았던 것이다. 두 사람은 다 같이 기존의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즉 바울이 유대주의(Judaism)를 무너뜨리고 기독교로 전환시켰듯이, 칼빈도 로마 가톨릭의 사제주의(clericalism)를 떠나서 사제와 평신도를 다같이 그리스도의 사신(使臣)/대사라는 동등한 위치에 놓음으로써 교회내에 존재하는 신분적 차별을 제거하였다.

왜 그랬을까? 바울에게는 "복음의 비밀의 말을 … 당연히 할 말"을 담대하게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널리 전하기 위함이었듯이(엡 6:19, 20), 칼빈도 기존의 제네바 교인들과 시민들에게 복음이신 예수님을 더욱 더 깊이 알게하고 또한 알리기 위함이었다.

칼빈에게는 또 하나의 과제가 남아 있었다. 이제는, 평신도를 복음전하는 사신/대사의 수준으로 끌어 올렸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음의 내용을, 즉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믿고, 고백하고, 전하도록 가르치는 교육이었다. 그가 세운 제네바 아카데미, 성무일과표에 따른 평신도 교육, 그리고 개혁교회 교인으로서의 제네바 시민의 삶과 생활 등은 다 교육을 위함이었다.

한국교회는 주로, 미국 장로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에 의하여 오늘의 성장에 이르렀다고 해도 크게 잘못된 말은 아닐 것이다. 장로교 선교사들은 1893년에 '선교원칙 10개 조항'을 제정하는 가운데 교회, 병원, 학교는 선교를 위한 기관으로 인정하였지만 사회복지 기관(당시에는 주로 고아원)은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시도하지도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선교 138주년이 되는 이 시기에 '한국 장로교회는 과연 칼빈이 세웠던 장로제도를 따르는 교회인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바울과 칼빈이 그랬던 것처럼 당연히 할 말, 즉 복음의 말을 선포하고 있는가? 그리고 칼빈이 제네바에서 그토록 강하게 실시하였던 평신도 교육을 엄격하게 실시하는가? 또한, 장로교회 교인이 갖추어야 할 도덕적 삶을 위한 권징제도를 실시하는가? 라고 질문하게 된다.

박대인 선교사(Rev. Edward W. Poitras)는 1984년에 '한국교회 권위가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하여 스스로 "없다"라고 대답한 후에, 권위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였다. 첫째는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며, 둘째는 교회와 교인이 지역사회 내에서 '도덕적 표준'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라고 하였다.

성경은 복음의 네 가지 조건을 명백하게 밝힌다. 그리스도는 첫째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약속되어야 한다. 둘째 다윗의 가문에서 태어나야 한다. 셋째 죽었다가 살아나야 한다. 넷째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내 아들이다는 선포가 있어야 한다(롬1:2~4).

한국 장로교회는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중심으로 설교하여 왔으며, 거의 모든 강단은 '예수님'과 '십자가' 그리고 '죄'와 '회개' 등의 주제를 놓치는 사례가 거의 없었다. 그 결과, 한국 장로교회와 교인들은 한국 사회로부터 "다르다!"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였다. 그런데, 1970년 초반부터, 특히 여의도 '엑스플로 74'를 기점으로, 한국 장로교회에서도 복음은 사라지고 '부흥'만 있는 교회로, 교파적 특성이 사라지고 연합만 강조하는 교회로, 목회자는 없고 장로만 있는 교회로 서서히 바뀌어져 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자주 듣는 소리가 "한국 개신교는 천주교 되고, 천주교는 개신교 되어져 간다" 혹은 "한국교회에는 죄인은 없고 의인만 있다" 이다. 이것이 과연 한국 장로교회를 대표하는 본 교단의 모습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다.

교회는 복음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그리스도로 믿는 동시에 '나는 죄인이다'라고 고백하는 기독교인들의 모임체이다. 한국 선교 138주년을 내다 보면서 한국 장로교회는 이제, 교회라는 제도를 유지하는데 급급하기보다는 교회의 기본적 정신, 즉 그리스도의 사신/대사로서 복음에 관하여 "할 말"을 담대하게 말하는 교회의 원래적인 아름다움(forma)을 다시(re)회복하는 개신교(Reformed Church)가 되기를 바란다.

차종순 목사 / 전 호남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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