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보이는 이유

말이 보이는 이유

[ 목양칼럼 ]

이정재 목사
2022년 09월 14일(수) 08:15
우리 말에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어느덧 담임목회를 시작한 지 꼬박 십 년이 됐다. 바뀐 것이 있다면 늘 지시를 따라 일하던 부교역자의 자리에서 여러 가지 사역을 지시하고 지켜보는 담임목사의 입장으로 바뀐 것이다. 담임목사가 되고 여러 교역자와 함께 사역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때론 일방적인 지시를 하는 경우가 있고, 때론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눌 때도 있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흔히 그 사람의 생각을 읽게 된다. 아마도 이는 사람이 말을 통해 자기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담임목사가 되고 약 한 해 반이 지나간 때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사역에 관해 부목사가 와서 보고할 일이 있었다. 보고의 내용은 일상적인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보고를 하는 부목사의 말을 통해 보고의 내용보다도 보고하는 자의 마음이 어떤지가 보이는 듯했다. 같은 내용을 보고하는데 그가 어떤 마음을 갖고 보고하고 있는지가 보이는 듯했다. 신기했다. 어떻게 말을 통해 마음이 보일까? 그 이후 교역자들을 대하고 교역자들의 보고를 받을 때마다 그 부분을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어떤 때에는 사역을 마음에 담아 더 좋은 사역의 방향을 이끌기 위한 조언의 마음으로 보고하는 이야기를 볼 수 있었고, 어떤 때는 사역 속에서 드러날 실수와 허물을 감추기 위해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보고가 보이기도 했다. 물론 내가 보고 느끼고 판단하는 것이 다 맞지 않을 수 있겠지만, 신기하게도 그것이 하나하나 보이고 느껴지니 교역자의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보이는 것이 오히려 나를 당황하게 하는 모습처럼 여겨졌다.

그러한 일을 겪으며 문득 내 마음을 채우는 생각이 있었다. 바로 지난 이십여 년간 사역하면서 만났던 여러 담임 목사님의 모습이었다. 오랜 시간 목회 현장에서 많은 교역자들을 만났던 그 분들은 얼마나 많은 교역자들의 속마음을 읽고 느끼며 그 속을 볼 수 있었을까. 짧은 나의 담임목회 기간 속에서 내가 느꼈던 작은 경험들을 통해 그 분들이 보았을 내 마음을 생각하니 갑자기 부끄러움과 죄송함이 밀려들었다. 얼마나 욕하고 싶으셨을까? 얼마나 혼내고 싶으셨을까?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치기 어린 부족한 자의 허물로 이해하시고 용납해 주신 그 분들을 생각하니 한 없이 죄송한 마음 뿐이었다. 다 알면서도 눈감아주고, 모든 허물을 덮어주신 여러 담임 목사님이 떠올라 죄송함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을 뿐이다.

코로나의 여파가 조금은 가셔진 지금 다시금 여러 가지 사역들을 위해 교역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아지게 된다. 대화는 언제나 교역자들의 생각을 읽을뿐더러 저들의 마음까지도 보게 된다.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는 저들의 말을 통해 여전히 좋은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지만, 때론 그렇지 못한 모습에 내 마음이 상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여전히 원치않는 불편함이 내 마음을 차지한다. 그러나 그 때마다 결심해 본다. 과거의 만났던 여러 목사님들처럼 알면서도 이해해 주고, 보면서도 못 본 척 해주셨던 그 분들의 그 넉넉한 모습처럼 나도 그런 맘 넓은 목사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아마 나중에는 우리 교역자들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도 누군가를 통해 사람의 말이 귀에 들리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인다는 사실을.



이정재 목사 / 신곡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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