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자세

여름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자세

[ 시인의세상보기 ]

이재훈 시인
2022년 08월 10일(수) 10:00
뜨거운 여름이다. 매년 여름을 어떻게 보낼까 골몰한다. 나는 겨울에 태어난 사람이라 그런지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겨울이 좋다. 겨울밤 이불속의 아늑함과 따뜻함을 좋아한다. 심지어 폭설과 한파로 통제된 겨울의 고립감을 좋아하기도 한다. 유년 시절을 강원도 산골에서 보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북유럽의 차갑고 고즈넉한 곳에서 사는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여름은 모든 것이 뜨겁고, 부패하고, 냄새나고, 끈적끈적하다. 무엇보다 저녁이 와도 대낮처럼 환하고 선명하다. 차가운 음료를 많이 마셔 배탈도 자주 난다.

올 여름도 어떻게 보낼까 고민했다. 작년에 들렀던 강원도 횡성의 집필 레지던스에서 보름을 머물렀다. 그리곤 부산을 찾았다. 비교적 사람들이 드문 곳을 찾아 바닷바람을 쐬었다. 바다와 강이 함께 머무르는 구포 낙동강변의 풀밭에서 밤공기를 마셨다. 나머지의 여름은 개강 준비와 마감 일정으로 학교와 도서관을 들락거릴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내게 피서는 조용한 곳을 찾아 나서는 일의 연속이다.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해수욕장보다는 조용한 계곡이 좋다. 자리를 잡느라 전쟁인 수영장이나 워터파크보다는 집에서 에어컨 켜놓고 영화를 보는 게 훨씬 좋다. 어떤 해의 피서는 만화 조선왕조실록 15권을 휴가철 집에 틀어박혀 읽은 적도 있고, 어떤 해의 피서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지리산 계곡을 헤맨 적도 있다. 가급적 사람들과 멀어지는 것이 내게는 가장 편안한 피서이다.

사람들마다 피서를 하는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산과 계곡을 찾거나 바다를 찾는다. 물이 좋기로 유명한 계곡과 해수욕장은 해마다 사람들로 넘쳐난다. 수련회나 캠프에 참가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집에서 책을 읽거나 시리즈 드라마를 보며 피서를 한다. 집 나가면 고생이고 집이 가장 시원하며 경제적으로 이득이라는 것이다. 요즘은 호캉스가 유행이란다. 애초에 여름 휴가철 도심의 호텔은 사람이 없어 가격이 무척 저렴했다. 하지만 호캉스가 유행하면서 성수기 수영장이 딸린 도심의 호텔은 부르는 게 값이 되었다. 어쩌면 여행은 사람들로 붐비지 않는 계절이 가장 좋은 때가 아닐까.

피서는 일사병과 같은 여름철 질병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시작되었다. 신라시대 사료에는 경주 근처 울주 태화강가에서 피서를 즐겼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 임금이나 신하들의 피서법은 많이 알려졌다. 전국 곳곳에 남아 있는 정자와 누각들은 여름에도 시원한 천혜의 자연경관을 가진 곳에 지어졌다.

올 여름은 대한민국뿐 아니라 지구 전체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프랑스는 송수관까지 마르는 극심한 폭염과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영국은 기상 관측 이래 최고 기온인 40도를 넘는 폭염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이며 폭염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는 소식도 연이어 들린다. 무엇보다 지구촌 환경과 기상에 관한 위기의식과 대처가 시급하다.

또 하나. 에어컨도 켤 수 없는 쪽방촌과 같은 주거빈곤층 혹은 에너지빈곤층이 우리 주변에 많다. 그들에게 집에서 피서를 즐긴다는 것은 다른 나라 얘기나 다름없다. 또한 바깥에서 폭염을 온몸으로 견디며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도 많다. 그들을 생각하는 것 또한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름을 어떻게 맞이하고 보내야 할까. 여름을 보내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나름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성전과 도전의 목록을 삭제해./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자들에 대한/무시가 필요해./드라마와 웹툰에 대한 맹목적 신뢰가 필요해./비슷한 여름을 맞는 자들에 대한/환대도 잊지 말 것."(졸시, '여름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자세')이라고 얘기한 것처럼. 내가 행복하게 여름을 보내는 방법 찾기가 중요하다. 피서는 스트레스나 과로가 아닌 평안과 건강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훈 시인/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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