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아프시다

아버지가 아프시다

[ 시인의세상보기 ]

이재훈 시인
2022년 06월 08일(수) 10:00
아버지는 평생 목회를 하셨다. 전국의 시골 지역을 돌며 노인목회를 하셨다. 명절이 되면 노인들이 검은 비닐봉지에 소고기나 떡 등속을 넣어 방문했다. 이 목사님 고마워. 내가 줄 게 이거밖에 없어요. 때로는 고향에 내려온 자식들을 앞세워 세배를 시키기도 했다. 어머니께서 이 목사님 얘기를 그렇게 하십니다. 어머님을 보살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연신 머리를 숙였다.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노인대학을 열어 무료한 시골살이를 신명나게 만들었다. 봄가을이 되면 관광버스를 불러 꽃구경을 갔다. 아버지는 늘 활기차고 건강하셨다.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으셨다. 정년퇴임 예배에서 가장 감사한 일이 건강을 주신 거라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평생 목회를 하며 병치레가 없었기에 교인들에게 걱정을 안 끼쳤다고. 그것이 가장 감사한 일이라 했다. 그런 아버지가 이제 아프시다.

아버지가 쇠약해지기 시작한 것은 일 년이 채 되지 않는다. 심장에 작은 문제가 생겨 스텐트 시술을 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운동을 하다 계단에서 굴러 발목이 부러졌다. 몇 달을 병원신세에 입원까지 겪고 난 후 급속히 쇄약해지셨다. 몇 달 제대로 걷지를 못하고 나니 하체는 힘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약해졌다. 게다가 디스크 협착과 역류성식도염이 함께 왔다. 역류성식도염으로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다. 스텐트 수술한 부위도 자꾸 아프다고 하셨다. 한 마디로 몸 전체가 고장이 났다. 약을 한 주먹씩 복용하셨다. 급기야 아버지는 응급실을 찾았다. 지난 어버이날의 일이다. 대전에서 서울 연대세브란스 응급실까지 내달렸다.

우리 가족은 공지사항 단톡방이 있다. 단톡방을 통해 가족들의 근황과 기쁜 일이나 힘든 일을 알린다. 때론 여행을 가거나 식사를 할 때 찍은 사진들을 공유하는 여행앨범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버지가 아프시고 난 후 단톡방은 가장 발 빠르게 작동을 했다. 아버지의 증상과 병후를 공유하고 각자 가지고 있는 치료지식과 방법을 의논한다. 병원진료 경과일지를 써서 단톡방에 알린다. 병은 소문내라고 했다. 단톡방의 집단지성이 작동하니 훨씬 마음이 편하고 의지가 됐다. 응급실에서 큰 병적 징후가 발견되지 않아서 아버지를 우리집으로 모셨다. 형제들도 모두 모였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참 다행이라고 중보기도 덕분이라고 마음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그 후로 아버지는 많이 좋아지셨다. 여러 약을 함께 복용하여 생기는 약물부작용이라는 새로운 진단에 따라 약을 끊고 생활하신다. 지금은 매일 운동도 조금씩 하고 식사도 잘 하신다. 옆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대전 가장제일교회 김상인 원로목사님 등 목사님들의 도움도 컸다.

아버지에 대한 시를 쓴 적이 있다. "성실한 교사이자/건축노동자이자/노인들의 벗이자/신의 뜻에 결박당했던/당신은/물리도록 국수만 드셨다고 한다. (중략) 몇 젓가락이면 금세 비워지는 국수처럼/아련한 청춘이 빨리 비워지길 바라신 것일까./늦은 오후 당신의 삶이 국수처럼 말려 올라갔다."(졸시, '국수') 아버지는 국수를 좋아하셨다. 국수는 아버지뿐 아니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하지만 지금 아버지는 국수를 안 드신다. 건강 때문이다.

위의 시는 한 토막의 단상에 지나지 않는다. 아버지의 인생에 대해서는 아직 내가 말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는 아직 현역이기 때문이다. 목사는 은퇴하더라도 평생 목사라 불리는 직업이기에 현역과 다름없다. 사실 나는 아버지의 병환보다 어머니가 더 걱정이다. 곁에서 병간호를 하다가 탈이 날까 겁이 난다.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아들아. 아버지에 대한 시는 쓰면서 왜 엄마에 대한 시는 안 쓰니. 멋있게 한번 써봐라." 그 대답을 여기에 남긴다. "엄마. 모르시겠지만 내 시의 반 이상은 어머니에 대한 시에요." 부모님은 지금도 매일 저녁 가정예배를 드린다. 부부가 목청껏 찬송을 부르고 자식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신다. 내가 지금껏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재훈 시인/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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