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교회를 사랑할 책임이 있다"

"우리에겐 교회를 사랑할 책임이 있다"

[ 알기쉽게풀어쓴교리 ] 12. 교회 사랑학으로서의 교회론

김도훈 교수
2022년 05월 27일(금) 10:37
"바울처럼" -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교회를 사랑한 사도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이 노래를 듣노라면 작사가의 소망뿐 아니라 안타까움도 절절히 느껴진다. 필자도 한때 열심히 불렀다. 바울처럼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좌절감 같은 걸 느꼈다. "남을 위하여 당신들의 온몸을 온전히 버리셨던 것처럼" 사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늘 반문하고 곱씹었다. "바울처럼 사는 게 뭘까"하고. 어느 날 성경을 읽다 고린도전서에 이르게 되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말이 또렷이 보였다. 그리고 교회를 향한 바울의 마음이 보였다. 사실상 고린도 교회는 그리 모범적인 교회는 아니었다. 오히려 문제투성이의 교회였다. 도덕적 타락과 파벌로 인한 분열, 우상제물 논쟁, 성령의 은사 문제로 인한 논쟁, 성만찬 논쟁, 부활논쟁 등 많은 문제들로 가득 찬 교회였다. 오늘날 여기에 있었더라면 엄청난 비난 때문에 존폐 위기에 처했을지도 모르는 교회였다. 그런 교회를 향하여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불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한다고까지 표현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빌었다.

빌립보교회에 대한 바울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빌립보교회라고 문제가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그는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빌4:1)라고 불렀다. 그뿐 아니다. 지극한 사랑으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1:8)라고 까지 고백하였다. 마치 연애편지의 서두같은 느낌이다. 정말 바울처럼 살고 싶은가. 교회를 향한 바울의 마음을 읽는 데서 시작해보자.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교회를 사랑했던 바울의 마음으로 교회를 생각해 보자.

그런데 우리는 현실에 존재하는 지역교회를 긍정보다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경향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현실교회들이 여러 이유로 교회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교회의 부패와 타락은 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다. 교회는 발생한 이래로 부정적이고 타락한 모습을 보였다. 이상적 교회의 모델로 언급되는 초대교회 역시 분열과 타락이 존재했었다. 바울이 끊임없이 교회의 잘못들을 훈계하고 개혁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그 이유다. 그러나 그는 교회를 냉소하지 않았다. 교회의 부정적 모습을 직시하면서도 이 현실교회들을 하나님의 교회, 왕 같은 제사장, 부름 받은 자들, 선택받은 자들,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불렀다. 문제없는 교회는 없다. 연약하고 타락한 인간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교회도 교회다. 부족하고, 연약하여 깨지기 쉽고, 쉽게 분열하고, 상처주고 상처받는 우리가 바로 교회다.

칼빈도 교회에 부정적인 상황에 바울의 심정으로 이렇게 강변하였다. "고린도 신자들 가운데는 타락한 사람이 적지 않았으며, 사실 거의 회중 전체가 감염되었었다. 한 가지 죄가 아니라 아주 많았으며, 그것도 경미한 과실 정도가 아닌 무서운 비행이었다. 도덕적 방면뿐만 아니라 교리적인 방면에까지 부패가 있었다. 성령의 도구요 그의 증거에 의해서 교회의 존망이 결정될 저 거룩한 사도 바울은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하였는가? 그는 이런 교회에서는 손을 떼라고 하는가?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그들을 몰아내는가? 최종적인 저주의 벼락으로 그들을 때려 부수는가? 그는 이런 일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그들을 그리스도의 교회와 성도의 공동체라고 인정하며 선언한다"(기독교강요)

교회론은 '교회 사랑학'이다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친 "가장 좋은 길"이 있다. 사랑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하는지 돌아볼 일이다. 교회 안에서도, 교회를 향해서도 말이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가진 모든 것으로 구제할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종종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을 주례사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그 말씀은 파벌의 문제로 분열되어 있는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주신 말씀이다. 그것은 또한 오늘 한국교회에 주시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우리에게는 서로를, 그리고 교회를 사랑할 책임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운명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사명이다. 바울처럼 살고 싶은 우리의 과제다. "교회론은 '교회 사랑학'이다."

김도훈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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