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사귐이다

기도는 사귐이다

[ 주간논단 ]

유해룡 목사
2022년 05월 30일(월) 10:30
기도의 출발점은 누구인가? 기도자인가? 하나님 자신인가? 기도는 능동적인 행위인가? 수동적인 행위인가? 만약 기도의 출발자가 기도자라고 한다면, 기도는 능동적인 행위이어야 한다. 반면에 기도의 출발자가 성령 하나님이시라면, 기도는 수동적인 행위이어야 한다. 어떤 쪽의 주장이 옳은가? 누구도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어느 쪽이 옳다고 입증해 낼 방법은 없다. 기도는 베일에 싸인 신비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성사에서 보여주고 있는 탁월한 기도의 사람들의 경험을 들여다 보면 그들은 양면성을 잘 구사하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는 기도자가 기도의 출발자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홀로 감당할 수 없는 유무형의 장애물에 부딪힐 때에, 그 굴레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동기가 기도의 출발이 된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이라고 모두 그 문제 해결을 위하여 자동적으로 기도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어떤 사람들만이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서 기도로 나아간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는 기도자의 의지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임에 틀림없다. 이런 식으로 기도를 이해할 경우 장점도 없지 않다. 기도의 목표가 분명하여 강력한 기도의 동기를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기도는 주문적(呪文的)인 성격이 강하다. 기도자의 정성과 수고에 따라서 기도의 응답이 좌지우지된다는 믿음이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통상적인 우리네의 속담과 결을 같이하는 기도의 태도이다. 우리가 이런 동기로 기도에 임한다면, 기도는 인격적인 교제라기보다는 성취를 위한 수단이요, 그 기도의 효용성은 미래 어느 때 일어날 결과에 의존한다.

그러나 우리가 원론적으로 모두 동의하는 대로 기도의 본질적 목표는 주님과의 코이노니아(사귐)에 있다. 이 사귐의 기도를 받아들인다면, 기도의 우선성은 무엇보다도 성령 하나님의 개입에 있다. 성령 하나님이 기도의 출발자가 되시고, 기도자는 이에 대한 수동적 응답자가 된다. 우리의 기도의 동기가 비록 외부적인 어떤 현안 문제와 밀착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 기도를 끌어가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이런 믿음을 가지는 기도자라면 능동성과 수동성을 적절하게 구사하면서 하나님과의 사귐의 기도로 나아가게 된다. 즉 기도자는 그 결과에만 의존하지 않고, 이미 과정에서 응답을 받기에 실패로 끝나는 기도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예를 들자면 이렇게 기도를 끌어갈 수 있다. 주어진 여건이 불만스러워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거나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고 하자. 일반적인 기도는 물론 직면한 불만스러운 상황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에 사귐의 기도라면 기도자는 고통스러운 자신의 모습에 주목하면서, 그 모습을 기도로 가지고 나아간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심은 불만스러운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그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기도자는 고통스러운 자신의 내면의 사정을 솔직하게 토로하는 동안, 현안문제 해결 여부와 상관없이 성령 하나님과 사귐의 열매를 얻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상대할 만한 대화의 파트너로 받아주었기에 일방적이 아닌 쌍방적인 대화의 기도가 가능하다. 기도는 우리의 결단에 의해서 출발 되지만, 동시에 이미 성령 하나님이 개입된 사건이다. 그러므로 성숙한 기도란 능동성과 수동성을 시의적절하게 구사하면서 결과에 매이지 않는 과정에 주목할 때에 일어나는 사귐의 기도이다.

유해룡 목사 / 모새골공동체교회·장신대 명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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