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하는가?

왜 우리는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하는가?

[ 알기쉽게풀어쓴교리 ] 8. 탈-교회(post-church)시대의 교회론 -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해명(1)

김도훈 교수
2022년 05월 04일(수) 14:00
탈-기독교시대, 탈-교회시대, 이 기막힌 말은 서구교회의 역사와 상황을 반영한 말이나 우리에게도 더 이상 생경한 단어가 아니다. 낯익은 언어다. 서구와 달리, 우리는 기독교 국가라는 제도적 교회를 경험한 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 역시 탈교회 시대를 맞고 있다. 교회가 쇄락하고 있으며, 제도적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왜곡되고 있다. 더 이상 교회에 신뢰를 주려하지 않는다.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점증한다. 영향력을 점차 상실해 가고 있다. 한마디로 교회의 위기다.

무엇 때문인가? 급변하는 문화 때문일 수 있다. 과학기술 문명 탓일 수도 있다. 다원주의와 급진적 상대주의와 무신적 유물론 등의 정신적 사조도 한몫을 차지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안에도 있다. 위와 같은 외부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하는 우리의 부족함도 문제지만, 교회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태도도 문제다. 우리는 너무나 손쉽게 교회를 비난하고 정죄한다. 마치 나는 교회밖에 있는 사람인 양 말이다. 탈교회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회에 대한 우리의 생각부터 바꾸어야 한다. 교회는 믿음의 대상이며,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희망의 대상이자 도구이며, 사랑의 대상이다. 앞으로 이에 대해 차례로 살피고자 한다. 이러한 정의들은 교회를 소중히 여기고 교회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중요한 신학적 대안이 될 것이다. 생각은 실천을 낳고 행동을 바꾸기 때문이다.

교회론이란 무엇인가? 교회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시선이 교회론이다. 여기서는 '믿음 대상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해명'이라는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사도신경을 소개하면서 이 내용을 간단히 언급한 바 있으나 여기서 좀 더 상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사실상 교회가 믿음의 대상이라는 말은 매우 조심스러운 말이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모임이므로 믿음의 대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중요 교리서들이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놀라운 것은 교인들은 매주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교회를 믿는다"는 고백을 해본 적이 없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슬픈 현실이다.

사도신경은 "나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고,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은 "나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라고 고백하고 있으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거룩한 보편적 교회'에 관하여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라고 물은 다음 다음과 같이 답한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의 처음부터 마지막 날까지 모든 인류 가운데서 영생을 위하여 선택하신 교회를 참된 믿음으로 하나가 되도록 그의 말씀과 성신으로 자신을 위하여 불러 모으고 보호하고 보존하심을 믿습니다. 나는 지금 이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이며 영원히 그러할 것을 믿습니다." 이 글들에서 유념할 것은 교회 앞에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하나" 등의 수식어가 첨부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순히 교회 자체를 믿는다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신앙고백서만이 아니다. 칼뱅의 정신을 이어받은 개혁교회 정통주의자들 역시 다양한 이유로 교회는 신앙의 대상임을 주장하였다. 부카누스는 "이 교회는 세계가 시작할 때부터 존재해 왔으며 지금도 존재하고 앞으로 세상 끝 날까지 존재할 모든 신자와 선택받은 자로 구성되기 때문에, 모두가 함께 모이며, 따라서 결코 아무도 육체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분명히 교회는 믿음의 대상이지 시각의 대상이 아니다"고 주장하였다. 올레비아누스는 "하나님이 영원한 사망 이외의 아무런 공로도 없는 사람들의 마음에 그의 은혜를 심어주었기 때문에 교회의 존재는 신앙의 조항이다"라고 언급하였다.

김도훈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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