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

[ 가정예배 ] 2022년 4월 14일 드리는 가정예배

김동천 목사
2022년 04월 14일(목) 00:10
김동천목사
▶본문 : 시편 116편 12~19절

▶찬송 : 272장



시편 116편은 사순절의 마지막 한 주간을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절정들을 깊이 회상하게 이끈다. 시인은 자기가 처했던 당시의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즉 임박한 죽음이 있었고, 슬픔에 빠져 있었으며, 그리고 비틀거리는 비참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요인들은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신 것처럼 모두 외부로부터 오는 어떤 힘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시116편 3절)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생각해야 한다(12절). 지금 시인은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죽음에 이르는 공포와 비애를 겪으며, 비참한 모습과 같은 절망들을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있다. 예수님도 고난주간에 동일하게 이러한 것을 마주하고 계신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상황이라면 불의에 대하여 당장 분노하게 되며 불신앙의 모습이 정당하게 인정될 것이다. 본문은 이런 절망의 시간에 놓여 있을 때 이 순간 은혜를 베풀어 주실 분이 누구인가를 찾으라고 말씀한다. 고난주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통하여 받은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우리 자신 스스로에게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지만 받은 은혜를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되겠다.

둘째,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겠다고 다짐해야 한다(14절, 18절). 성경은 동일한 원문을 각각 다르게 번역하여 옮겨 놓았다. 따라서 서원했던 것을 주님께 갚는 행위는 의미상으로 공동체 앞에서 약속을 지키고 살아가는 책임 있는 실천의 삶과 동일한 것으로 읽힌다. '나의 서원(네다라이)'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기 전이나 받은 후에 하는 맹세인데 그것을 갚아 가겠다고 고백한다. 여기에 '갚다(아샬렘)'라는 단어의 어근은 완전히 회복된 관계를 맺어가는 사역의 의미가 있어서 불완전한 관계를 완성시키기 위한 자신의 노력과 투철한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 즉 시인은 이전에 겪었던 괴로운 일들로 인하여 주님과 멀어져 있었던 불완전한 상태를 뒤로하고 개인적인 은혜의 체험으로 다시금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굳은 신뢰를 쏟아붓겠다고 고백한다.

셋째,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며 살겠다고 결단해야 하겠다(17절). 감사의 표현을 대표하는 '감사제(제바흐 토다)'에서 '토다'라는 단어는 '고백하다', '찬양하다'라는 뜻의 동사 '야다'에서 파생되었으며,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인간의 고백을 나타내는데 쓰인다. 이에 대하여 시인은 구체적으로 '구원의 잔'(13절)을 들고 주님의 이름을 부를 것이라고 한다. 수난주간 성찬의 기회가 가까이 이르렀다. 성찬식의 잔에 대하여 바울은 '축복의 잔'(고전10:16)이라고 했다. 어느 때보다 수난을 당하시는 그리스도의 육체적 고통을 느끼며, 고난의 절정에 "엘리 엘리"라 부르짖으며 스스로 자신의 몸을 제물 삼아 서원을 갚고,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시고 서로 화목(골 1:20)하게 되기를 기뻐하신 주님을 어느 때보다 더욱 높이 찬양해야 하겠다.



오늘의기도

십자가의 고난 속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 원하셨던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아 평생 찬양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동천 목사/독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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