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찌 삽니까? 교회가 집 지어 줄 수 있습니까?"

"이제 우찌 삽니까? 교회가 집 지어 줄 수 있습니까?"

[ 현장르포 ] <동해안 산불 피해 현장을 가다>강원도 삼척 원덕교회 교인 5가정 산불 피해
교회 피해 크지 않지만, 주민들 위해 적극 나서야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2년 03월 14일(월) 09:38
【 강원도 삼척·동해 일대 =최은숙 기자】 "지금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집이 모두 불에 탔는데 아무 희망도 없습니다"

강원동노회 원덕교회(마신일 목사 시무) 교인인 김기현 성도는 이번 산불로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고 '이재민'이 됐다.

"이렇게 다 타버릴 줄은 몰랐는데…조부 때부터 지금까지 대를 이어 평생을 살던 집입니다. 급하게 대피하느랴 양말 한 켤레도 챙기지 못했는데 이제 우찌 삽니까…"

그는 임시거처에 머물고 있지만 하루에도 몇번 씩 폐허가 된 집 앞을 찾아와 깊은 한숨을 쉬고 돌아간다.

"인터뷰하면 교회가 집 짓는 것 도와줄 수 있냐?"고 물을 만큼 절막한 심정이 고스란이 느껴졌다. 그럴만도 했다. 그야말로 '불에 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여기는 거실이고… 여기에서 머리를 감았는데… 여기에 소파가 있었고… "

김 씨와 함께 집안 내부로 들어가 봤다. 콘크리트 뼈대만 남은 집에는 세간살이 모두가 불에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바닥은 가구 철기둥이 나뒹굴고 유리조각과 외벽의 파편으로 가득했다. '어쩌면 이렇게 홀라당 다 타버릴 수 있을까?'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불길에 녹아내려 철제만 흉축하게 남겨진, 어쩌면 자녀의 효도선물일지도 모를 '안마의자'만이 지난 산불의 처참함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산불 피해로 충격을 받은 아내가 몸저 누워있을 뿐 이제 남은 건 없었다.

김기현 성도가 사는 '고포마을'은 강원도와 경상도가 공존하는 마을이다. 한 마을이지만 고포월천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행정구역상 삼척시와 울진군으로 나누어 생활하고 있다. 김 씨의 집을 나와 바로 건너편 '울진군'까지 몇 발자국만으로 이동이 가능했다.

이 곳은 불에 탔다기 보다는 완전히 녹아내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였다. 철제 기와가 완전히 바닥으로 녹아내렸고 담벼락은 무너져 바닥이 벽돌 잔해로 가득했다. 손길만 스쳐도 건물이 무너져 내길 것 처럼 위태로워 내부는 들어가보지 못했다. 이곳은 이 마을 '이장' 집인데, 당신의 집이 불에 타는 순간에도 주민들을 대피시켰다는 '미담'이 전해졌다. 길에서 만나는 주민들도 "다른 집은 몰라도 이집은 꼭 다시 지어줘야 한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이장'집과 맞닿아 있는 한 집은 계량기가 불에 녹아내려 전기도 난방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집 주인인 이웃은 "이정도만 해도 얼마나 다행이냐"면서 놀란 가슴을 연신 쓸어 내렸다.

울진군 북면 북구에서 양봉농장을 하는 김정주 성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 곳이 양봉농장인가?'싶을 정도로 처참하게 타버렸다. 마신일 목사는 "김정주 성도는 '암'이라는 큰 병마와 싸우면서도 열심히 양봉농사를 지으시고 교회도 열심히 나오셨다. 이런 일을 겪게 되서 목회자로서 마음이 안좋다"고 말했다. 다행히 김정주 성도의 주택은 무사했지만 각종 농기구와 비닐하우스, 양봉시설이 모두 불에 타 생업을 잃게 됐다.

이번 산불로 원덕교회 교인 5가정이 피해를 입었다. 마신일 목사는 "교인은 물론, 지역 주민들의 피해가 커서 마음이 아프다"면서 "한국교회가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특히 마 목사는 "이번 산불로 인한 피해와 고통을 회복하고 치유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물질적인 지원은 물론이고, 화마를 겪은 이들이 정서적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도록 교회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이번 산불로 울진·삼척과 강릉·동해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지만 정부의 지원금으로는 이재민들의 피해액 전액을 보상 받을 수 없고, 주택을 잃은 이재민들은 조립주택 생활을 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2년으로 한정되어 있어 앞이 막막한 현실이다.

경상북도 울진에서 시작돼 강원도 삼척과 동해 일대로 번진 산불의 현장을 방문하기로 하고 지난 11일 강릉에서 강원동노회 목사부노회장 김정식 목사(나눔의교회)를 만났다.

지난 4일 경상북도 울진에서 시작된 산불은 13일, 213시간 43분만에 진화될 정도로 역대 최장기 산불로 기록됐다. 산림 피해 면적도 축구장 2만 9304개 넓이로 역대급이다. 동해안 산불만 따지면 서울 면적 4분의1의 규모로 역대 두 번째 큰 피해다.

다행히 교회와 교인의 피해가 없어 한숨 돌리고 있었지만 강원동노회 삼척시찰 내 원덕교회 교인 5가정이 산불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 접수됐고, 급하게 피해현장을 살펴보기로 했다. 설사 교회의 피해가 없었더라도 이번 산불로 400여 채의 가옥과 건물이 불에탔고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팩트다. 수백만 그루의 나무가 죽고 야생동물들은 죽거나 서식지를 잃었다. 숲과 기대어 살던 주민들은 삶의 터를 잃었다.

교회가 뒷짐지고 있을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강원동노회가 재해대책위원회를 가동시키고 총회 재난봉사단 거점교회인 동해교회(임인채 목사 시무)가 속초중앙교회(강석훈 목사 시무)와 김정식 목사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향후 교회의 봉사와 섬김 역할을 발빠르게 모색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고속도로에서 바라본 하늘에는 종종 헬기가 보였다. 이미 산불이 90%이상 진화된 상태여서 연기와 재냄새는 많이 사라진 듯했고 상황도 급박해보이지는 않았다. 김정식 목사는 "이번 산불은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 때문에 진화가 쉽지 않았고, 밤에는 헬기도 동원이 될 수 없는 상황이라 불에 타는 걸 망연자실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우리는 분명 산불 피해 현장으로 가는 길이었지만, 그 길 곳곳에는 여전히 아니 '버젓이' 지난 산불의 상처들이 남아 있었다. 2000년 강원도 동해안 산불의 피해현장도, 지난 2019년 산불의 현장은 아직도 피폐했다. 분명 저 산등성이는 소나무로 울창했던 숲이었을 텐데 지금은 초토화 돼 참혹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시간에도 산림이 불에 타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니…. 분명 봄날이었고, 이제 막 꽃망울이 활짝 터뜨려질 것 같은데 상처가 또 다른 상처로 덧입혀지고 있었다. 사막처럼 마른 땅, 벌거벗은 숯더미 산을 바라보자니 참혹했다. 삼척으로 가는 길 곳곳에 검게 그을린 산과 넘어져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생명'보다 '죽음'에 더 가까운 것 같아 두려움이 밀려왔다.

김 목사는 "피해지에 대한 경관 조림을 해도 30년은 지나야 나무다운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면서 "특히 산불이 덮치면 토양이 척박해져 생존율이 떨어지고 더욱 세심하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걸린다"고 설명했다.

삼척의 원덕교회에서 마신일 목사가 합류에 피해현장을 둘러봤다. 이재민들은 임시거처로 덕구온천호텔에서 머물러 있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이재민 대피소 생활 중 코로나19에 감염돼 현재 초초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 목사는 "힘내세요. 약해지지 마시구요" "몸조리 잘하세요" 라며 주민들을 위로했다.

김정식 목사는 마을의 특성상 '감정적인 갈등'이 생길까 우려했다. 골목을 사이에 두고 행정구역이 나눠져 있어 "어느 지자체가 지원을 많이 해주는지 아닌지에 대해 은근히 위화감이 있고 갈등이 조장되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교회는 차별없이 현장에 알맞게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계속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특히 이번 산불은 일괄적으로 모든 주택들이 한꺼번에 피해를 본 것이 아니라 강풍으로 불덩어리가 떨어진 주택만 크게 전소돼 피해자들의 상실감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삼척과 울진인근 지역을 둘러본 후 동해로 이동했다. 동해는 묵호동과 발한동 등지를 덮치며 110개 건물이 사라지거나 피해를 입었고 116명이 보금자리를 잃었다. 동해시에도 역시 교단 산하 교회와 교인들의 피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동해중앙교회(이민성 목사)가 교회 인근의 피해지역 주민을 위해 교인들과 정성을 모아 헌금을 전달하며 위로를 전했고 타교단 교회도 적극적으로 피해주민을 위해 팔을 걷어부치며 봉사에 나서고 있다.

동해에서는 월드비전 동해종합사회복지관에 먼저 들려 서순영 관장을 만나 동해시 기독NGO단체의 활동에 대해 듣게됐다. 월드비전은 강원·경북 지역에 발생한 산불로 어려움을 겪는 아동 및 이재민을 위해 긴급구호키트 1100개를 순차적을 전달하고 있었다. 긴급구호키트는 이재민들이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간편식과 세면도구 등의 생필품과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마스크, 자가진단키트, 위생용품 등으로 구성됐다. 이 밖에도 저소득 가정 중심의 주거재건비 지원, 필수 생필품(가전·가구 등)을 제공하고 아동의 피해 상황을 파악해 아동의 심리·정서 회복을 위한 아동보호 프로그램도 연계하기로 했다.

서 관장은 "강원도 지역에 그동안 크고 작은 재난재해가 많이 발생해 NGO단체는 물론 지자체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면서 "교회는 지금의'반짝'관심이 사라졌을 때 외롭고 힘든 이재민들의 손을 잡아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교회가 피해자들의 정서지원을 위해 연대해줄 것을 거듭 요청했다. 서 관장은 "화마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이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리는 후유증을 겪고 있다"면서 "생업을 잃고 고향을 떠나기도 하고, 정신적인 고통으로 일상적인 생활이 어려운만큼 교회가 이 부분에 적극 나서줄 것"을 부탁했다.

늦은 오후 동해교회 임인채 목사를 만나 총회재난봉사 거점 교회로서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임 목사는 "총회 재난봉사 거점 교회로 향후 교회가 피해지역과 이재민들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속초중앙교회와 노회 관계자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해교회를 나선 후 동해중앙교회 이민성 목사가 합류해 동해 지역의 피해현장을 방문했다. 지난 2019년 산불의 여파와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시내 곳곳의 민가가 초토화 된 현장은 적막감이 흐르고 있었다.

이번 산불은 지난 13일 '봄비'로 주불을 모두 잡았다. 산림당국은 지난 3월 4일 경북 울진에서 발생해 강원 삼척까지 확산된 울진 삼척 산불의 주불 진화를 13일 오전 9시부로 선언했다. 산불은 13일까지 총 9일간 진행됐고, 울진군 4개 읍면, 삼척시 2개 읍면이 잠정 피해 지역으로 확인됐다.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주택 319채, 농축산 시설 139개소, 공장과 창고 154개소, 종교시설 등 31개소 등 총 643개소의 재산이 소실된 것으로 조사됐다. 산림피해는 울진 1만 8410헥타르, 삼척 2460헥타르 등 총 2만 923헥타르이며 이 중 실 피해 면적은 추후에 정밀조사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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