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의 눈물

백구의 눈물

[ 목양칼럼 ]

서규석 목사
2022년 03월 09일(수) 08:15
필자가 섬기는 교회 옆마을엔 공무원 생활을 오래 하시고 정년 은퇴한 후, 소일거리로 텃밭을 일구며 닭과 토끼 등 몇 종류의 가축을 기르며 지내는 분이 계신다. 집은 읍내에 있고 아침마다 자동차로 7km정도 되는 바로 이곳으로 와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분에게 애지중지하며 키우는 백구가 한 마리 있는데 얼마 전에 새끼를 낳았다. 하얀 눈이 내리던 날, 산책 삼아 백구가 있는 곳으로 가 보는데 이게 웬일인가? 백구는 엄동설한 중이던 1월 말경에 새끼를 낳았는데 무려 8마리나 낳은 것이다. 그런데 백구 집에는 8마리가 아니고 3마리만 올망졸망 꼬리를 치며 놀고 있었다.

주인장에게 물었다. "아니 백구가 새끼를 8마리나 낳았다면서 왜 3마리만 있나요?" "아 그거요? 어느 날 제가 와보니 8마리 낳았는데 5마리는 죽고 3마리만 남아 있던데요…"

아, 가슴 아픈 일이다. 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떨었을까?

내용인즉, 백구는 여덟 마리의 새끼를 낳았지만 다 품지 못하고 다섯 마리는 엄마 품을 벗어나 있다가 강추위에 얼어서 죽은 것이다. 실로 삶과 죽음의 차이는 한 뼘도 안 되는 곳에 있었다.

생명으로 태어났지만 생명이 되지 못한 곳, 삶이 시작되었지만 삶이 더이상 이어지지 않는 땅, 기대와 희망을 바라보지만 슬픔과 탄식의 먹구름만 밀려오는 시간들, 이 모든 것들이 공존하는 세상 그 한 가운데에 너와 내가 함께 서 있다. 그러면서도 그 어떤 것도 감지할 수 없는 무감각의 소용돌이 속에 우리의 생명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그 누구도 삶의 존재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생명을 파고드는 강추위는 밀려올 것이고 그 누구도 삶의 가치관을 전환 시키지 않는 한, 목숨을 위협하는 무음의 소리들이 엄습해 올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디에 그 삶의 의미가 있을까? 추운 줄도 모르고, 아니 자신이 얼어 죽는 줄도 모르고 멀리멀리 그분 품에서 떠나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모양만 갖춘다고 인격이 다가 아니다. 분주하고 바쁘다고 하는 것만으론 인생이 다가 아니고 세월이 마냥 흘러간다고 사는 게 아니다.

지금 행복이 어쩌면 진정한 행복이 아닐 수도 있다. 지금 만족이 어쩌면 진정한 만족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람은 '어디로 가느냐?'가 관건이고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하며 그리스도인은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중요한 사안이다.

기나긴 겨울 끝자락을 지나 춘삼월, 그 생명의 숲에서 불어오는 새봄 온기가 옷깃을 스미고 있다. 모름지기 가야 할 곳과 있어야 할 곳을 찾아 떠나는 아름다운 순례자가 되어야 한다면 지금 우리는 백구의 눈물, 그 투명한 아픔 속으로 들어가 봐야 할 것이다.



서규석 목사 / 부안 동북교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