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 잊지 말고

타이틀 잊지 말고

[ 주간논단 ]

양의섭 목사
2022년 02월 08일(화) 08:08
고교 시절, 기술 시험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열심히 외웠다. 버튼만 누르면 줄줄 나올 정도로 그 내용을 달달 외웠다. 첫 글자만 봐도 '아 그거?' 하며 줄줄 나올 정도였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나와도 자신 있다고 시험지를 받아 들었는데, 문제가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대개 문제를 주면서 '그 내용을 쓰세요' 하던지, '그것을 설명하세요' 하는 것이었는데, 그 기술 시험은 내용을 먼저 쭈욱 나열하고는 '이것은 무엇을 설명하는 겁니까'라는 식의 문제였다. 꼼꼼히 공부했다면 뭐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는데, 그 당시 우리는 무조건 암기하던, 무작정 교과서를 달달 외우던 식이었기에 정확한 타이틀을 묻는 뜻밖의 질문에 혼란이 왔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살고 있지 않나 싶다. 코로나19로 인해 조금 둔해지고, 약해지긴 했지만 교회 생활이 얼마나 바쁜지 모른다. 그야말로 내용에 충실하느라고 정신 없이 산다. 일주일 내내 교회에 묶여 살기도 한다. 그게 믿음이 좋다고 추켜세우기도 한다. 정신 없이 바쁘게 일을 하고 봉사하고 훈련을 받는다. 그러니 교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바쁘겠는가? 그런데 뭔가 좀 허전하다.

그렇게 정신 없이 바쁘게 살다보니 타이틀을, 제목을 잊어버린 것 같다. 바쁘긴 한데 왜 바빠야 하는 건지, 이건 왜 해야 하는 건지, 뭔지도 모르고 그냥 한다. 그냥 시키니까 하는 거란다. 그렇게 정신 없이 평생 일하며 살았는데, 노후에 가만 돌아보니 자신의 삶에 예수님은 안 계셨다고 어느 분이 고백하던 것을 기억한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타이틀에 주목해 보자. 나는 누구이고, 이건 왜 해야 하는 건지, 이걸 하기보다 그 못지않게 주님 앞에 앉아서 물어보고 대답을 듣는, 이른바 성령의 교통하심을 경험하자. 고요함 속에 밀려오는 성령의 교통하심이 우리에게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

자선, 선행, 봉사, 섬김, 희생, 양보, 전도 등 다 필요한 것인데 그것을 하기 위해 우리가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에 필요한 것일 뿐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기에 필요한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타이틀을 잊지 말고 좀 더 진득하고 진실하게 예수의 심장으로 살자.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거의 강제적으로 교회는 고요함 속에 빠져 들었다. 기회이다. 한국교회는 바쁨을 내려놓고 고요함 속에서 들려오는 이 음성을 들어야 할 때이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1:11) 들려오는 이 감동 속에 벅찬 '그리스도인' 타이틀을 다시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 출발 하는 기회가 된다면 이 어려운 현실도 나쁘기만 하진 않을 것이다.

양의섭 목사 / 왕십리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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