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지 않는 것이 옳은 행동일 때가 있다

행동하지 않는 것이 옳은 행동일 때가 있다

[ 인문학산책 ] 44

김선욱 교수
2022년 01월 22일(토) 10:54
뚜 웨이밍.
철학을 처음 공부하는 이에게는 종종 철학사 읽기를 권한다. 나는 철학사를 공부하면서 생각의 맥락과 다양성, 인간 정신의 탁월성과 한계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철학사를 읽는 것이 철학을 공부하는 최고의 방법은 아닐 수 있겠지만, 서양과 동양의 철학사를 통해 철학에 접근하도록 안내한다.

동서양의 철학사를 공부하다 보면 동과 서가 서로 무관하게 정신세계를 발전시켜 왔음에도 불구하고 어찌 그리 유사한 점이 많은지 종종 놀라게 된다. 그리고 가끔은 어떤 생각이 더 우월한가 따져보기도 한다.

사상의 우열을 따지는 표현 중 하나가 황금율(golden rule)과 은율(silver rule)이라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보자. 예수님은 "너희는 다른 사람들이 너희에게 행하기를 바라는 대로 너도 남에게 행하라"고 적극적 행위를 명령한다. 그런데 공자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라는 소극적 자세를 말한다. 이 둘은 역지사지의 정신을 발휘하여 남을 배려하라는 점에서 그 근본정신은 같다. 다만 전자는 적극적 태도를 요청한다는 점에서 황금율로 불리고, 후자는 은율로 불렀다. 이런 규정은 칸트의 책에서도 등장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 2016년에 숭실대는 유학 사상의 최고 권위자 한 분인 하버드 대학의 뚜 웨이밍 교수를 모셔서 석학강좌를 열었다. 이 행사를 주관했던 나는 뚜 교수로부터 영어로 쓴 두 편의 글을 받았다. 그는 위의 공자의 말씀을 황금율이라고 불렀다. 뚜 교수와 대화 자리에서 나는 그 구절을 지적하면서 '오타' 혹은 '착각'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는 단호하게, "아니다. 그것이 황금율이다"라고 답했다.

뚜 교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것보다 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반적인 전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무엇을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가치가 더 있지 않냐는 나의 지적에 그는 "왜?"라고 물었다. 이 시대의 많은 문제가 자기에게 좋은 것을 남에게 행하려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냐고 그는 반문했다. 내게 좋은 것이 남에게도 좋다고 어떻게 확신하냐는 말이다.

내가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해서 중식당에 함께 간 아내에게 "당신도 짜장"이라고 주문하는 오류를 얼마나 많은 남편이 저질러 왔던가. 생각해보면 타인에 대한 능동성이 폭력이고 수동성은 미덕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 시대에는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하지 않도록 유의하는 것이 황금율이다. 이것이 뚜 교수의 주장이었다.

수동성에 대한 강조는 동양의 오랜 지혜였다. 행위않는 행위, 즉 의지적 무행위는 무위지위(無爲之爲)라는 노자의 지혜다. 행동하지 않는 것이 멋진 행동일 때가 있다. 이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 유익할 때가 있다. 말하지 않는 것이 웅변일 때가 있다. 지식을 말하지 않는 것이 지혜일 때가 있다.

뚜 교수의 말처럼, 현대의 많은 문제가 행위의 과도함에서 비롯된다. 환경위기나 기후 문제도 과도한 문명적 발전에 기인한 것이고, 현재 진행형인 미·중 간의 정치적 경제적 긴장 상태도 나의 이데올로기를 남에게 강요하는 것과 연관된다. 또, 내게 좋은 것이라고 해서 남에게 묻지 않고 행동할 때 무례가 생긴다.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렇다. 이런 점에서 행위보다 무위가 더 타당할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말씀에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황금율과 은율은 같은 정신의 다른 표현일 따름이다. 예수님께서도, 네가 좋아하는 것이면 남에게 강요해도 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은 결코 아닐 테니까.

그러고 보면 성서에서 우리는 소극적 태도, 혹은 수동성에 대한 강조를 종종 만나게 된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사 55:3)는 말씀이 한 예다. 귀 기울여 듣는 경청(傾聽), 공경해서 듣는 경청(敬聽)을 이루려면 말하기를 중지하고 모든 감각을 능동에서 수동으로 모드 전환을 해야 한다.

김선욱 교수 / 숭실대 학사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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