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적과의 동침

[ 주간논단 ]

고시영 목사
2022년 01월 25일(화) 08:32
어떤 사건을 관찰하고 그 문제점을 해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형식과 내용을 잘 살피는 것이다. 형식은 그릇이요, 내용은 그 그릇에 담은 핵심이다. 내용이 좋아도 형식에 담지 못하면 그 내용은 파괴되고, 형식이 좋아도 그 내용이 잘못되면 가치가 없다. 그래서 형식과 내용은 서로 적이지만 함께 동침해야 할 상대이다.

현재 한국교회는 위기이고 그 위기를 탈출하려면 형식적인 문제와 내용적인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이 두 가지를 함께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 우리 교단의 가장 핵심적인 형식적 문제는 목사와 장로의 갈등이다. 이 갈등은 교인들이나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인다. 입은 옷 보이 듯 아주 자세하게 보인다. 누가 옳으냐?, 그르냐는 그 다음이다. 갈등 자체가 신앙인으로서 추하다. 이제 중단해야 한다.

내용적인 면은 더 심각하다. 신성과 세속의 부조화가 문제다. 신앙은 신성과 세속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이고, 살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땅에 대한 이야기와 하늘에 대한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교회는 지루하고 현장감이 떨어진다.

부흥회도 해야 하지만 음악회도 해야 한다. 찬송도 해야 하고, 춤도 추어야 한다. 기도도 해야 하지만 책도 읽어야 한다. 전도도 해야 하지만 여행도 가야 한다. 목사의 설교는 결국 두 가지이다. 하나는 축복이고 다른 하나는 가치이다. 축복에 치우치면 미신으로 떨어질 염려가 있고, 가치에만 치우치면 윤리학이 될 위험성이 높다.

교인들이 원하는 것은 편하게 잘 살고 싶으면서 동시에 가치 있게 사람답게 살고 싶은 것이다. 목사들은 복 받으라, 복 받아야 한다고 고함을 쳤다. 결과가 좋았다. 그러나 이제 젊은이들은 복도 받지만 그보다는 사람답게, 보람이 있게 살고 싶어 한다. 삶을 가르쳐야 한다. 가치 있는 삶으로 인도해야 한다. 축복과 가치는 서로 일치되기도 하지만 서로 배치 될 때도 있다. 이런 경우 축복보다는 차라리 가치를 선택하라고 소리쳐야 한다. 그런 배짱도 없이 무슨 설교를 한다는 말인가?

정말 좋은 것은 축복과 가치가 동침하는 것이다. 동침해야 자식을 얻는다. 축복과 가치가 함께 결혼해야 교인들은 교인답게 된다. 목사의 설교 중에 관념과 행동도 동침해야 한다. 관념이란 머릿속에서 어른거리는 추상적이고 그림자 같은 것이고, 머릿속에 집어넣는 지식이다. 관념은 사물이나 사건을 이해하고 그 본질을 정리하는 것이지만 행동 그 자체는 아니다. 관념은 행동하기 위한 토대이다. 정리된 관념 없이 행동하는 것은 파괴다. 그러나 행동하지 않는 관념은 허구다. 관념과 행동이 동침해야 한다. 그것이 변화이고, 변화의 동력이다.

그동안 목사들은 관념적인 설교를 너무 많이 했다. 그래서 많은 교인들이 변화하지 못한 것이다. 성전예배와 영상예배도 동침해야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성전예배가 정답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영상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코로나가 진압되어도 영상예배는 철회하기가 어렵다. 우리 교단은 물론 한국의 모든 교회가 연대해서 영상예배를 폐지하지 않는 한 영상예배는 대세일 수밖에 없다. 서글픈 일이다.

성전예배와 영상예배가 이제는 조화를 이루게 해야 한다. 옛 것과 새 것도 동침해야 한다. 모든 것이 옛 것이면 버림받고, 모든 것이 새 것이면 적응하기 어렵다. 지켜야할 것과 바꿔야 할 것을 정리해서 서로 동침시켜야 한다. 특히 헌법이 그렇다. 자 서둘러야 한다. 때를 놓치면 우리 교단은 더 어려워진다. 결단하지 않는 그것이 가장 큰 죄다. 잘못된 결단이라도 결단하는 것이 낫다. 역사는 잘한 결단으로만 발전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결단 때문에 진보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고시영 목사 / 전 장기발전연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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