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보라

[ 목양칼럼 ]

이창교 목사
2022년 01월 19일(수) 08:07
21세기 뉴 밀레니엄이 시작된 지 벌써 22년째를 맞이하고 있고, 4차 산업 혁명은 다가올 세상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삶 속에 빠른 속도로 파고들어 익숙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아마도 인공지능과 인간수준을 능가하는 로봇들이 우리의 생활 속에 들어와 사람들의 역할을 대치하는 날이 곧 다가올 것이다. 유발 하바리(Yuval Noah Havari)의 예측처럼 인공지능 로봇은 인간 보다도 인간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하고, 인간의 감정에 더 잘 반응함으로써 인간보다 더 중요한 존재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류 앞에는 천국과 지옥의 문이 놓여있고, 어느 문을 열고 들어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그의 책 '사피언스'에서 경고한다. 과연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과 영적인 영역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신이 되려는 인간'은 그 인간을 뛰어 넘는 인공 지능에게 종속되어 버릴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 미래가 펼쳐진다면 과연 인류의 미래는 천국일까? 지옥일까?

일찍이 윌리엄 맥나마라(William McNamara)는 "현대사회는 너무나 노쇠하여 있고 모든 것이 진부하고 지루하게 하는 것들로 가득차 있다. 이러한 지루한 세상에서 지루함을 느끼지 않기에는 너무나 힘이 든다"고 했다. 과연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와 노쇠함, 지루함이란 말이 어울리는가? 이보다 더 빨리 변화하고 있는 21세기 4차 산업 혁명시대의 오늘과 내일은 이 단어들과 어울리는가? 결국 윌리엄 맥나마라가 말하고자 하는 '지루함의 정체'는 세상의 변화와 발전이 채워주지 못하는 '영혼의 공허함'일 것이다.

켄 가이어의 '영혼의 창'이라는 책에 '여기 있다 보라'는 시가 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으냐? 내 삶의 기쁨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내 모든 삶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고 싶으냐? 여기 있다 보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인생을 정말 아름답게 만들고, 가치있게 만들 수 있는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여기 있다 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그것이 무엇일까?

요한복음 4장에 수가성의 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이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현재 함께 사는 남자도 남편이라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뜨거운 정오에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물을 길러 나온 여인 이였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 물동이도 버려두고, 마을로 뛰어가서 사람들에게 '와서 보라'고 외친다. 켄 가이어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을 진정으로 아름답게 하고, 우리 인생에 진정한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고, 우리 인생을 가치있게 해 줄 그를 내가 만났다! '와서 보라' 내가 만난 예수! 그가 너희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것이다.

교회가 할 일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인생의 본질적인 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답을 줄 수 있는 것은 호모 데우스도 아니고, 인공지능도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한 교회만이 답을 줄 수 있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정신 없이 세상을 쫓아가는 교회는 절대로 세상에게 답을 줄 수 없다. 오직 복음의 능력과 성령충만함을 소유한 교회만이 '여기 있다 보라'고 답을 줄 수 있다.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여기 있다 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창교 목사 / 상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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