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화해'의 사도 남아공 투투 대주교 별세

'용서와 화해'의 사도 남아공 투투 대주교 별세

1984년 노벨평화상 수상, 진실과화해위원회 통해 인종간 화해 공로
에큐메니칼 운동가로서 WCC에서의 사역, 그의 신학에 전환점 돼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1년 12월 27일(월) 12:16
2006년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열린 WCC 제9회 총회에 참석한 데스몬드 투투 주교. 교회의 연합에 대해 설교한 그는 "우리 인간은 함께 협력해야만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 Igor Sperotto/WCC
1983년 제 6회 WCC 총회에 참석한 투투 주교. /사진 Peter Williams/WCC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며 세계 인권의 상징이 된 '용서와 화해의 사도' 데스몬드 투투 명예 대주교가 지난 12월 26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세.

투투 대주교는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과 함께 남아공 민주화와 흑인 자유 투쟁의 지도자로 추앙 받아왔으며, 반(反) 아파르트헤이트 투쟁으로 198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특히 넬슨 만델라 대통령 당선 후 진실과화해위원회를 구성해 인종 간 화해를 이끌어내 전세계적인 지도자로 존경을 받아왔다.

1972년에서 1975년까지 세계교회협의회(WCC) 프로그램 실행위원의 경험은 투투 대주교는 그의 신학에 큰 전환점이 됐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WCC 신학교육펀드 사역을 했던 그는 제3세계의 교회와 공동체에 필요한 신학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했으며, 이때 에큐메니칼 인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세계와 남아공 사회의 부정의(不正義)를 인식하고 분석하는 시각을 키웠다.

WCC 인종주의와의 전쟁 프로그램의 전 책임자 볼드윈 스졸레마는 "당시 데스몬드는 자신의 집이 피해를 입을 것을 우려해 프리토리아 정권에 대해 너무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 했었다"며 "그러나 1975년 요하네스버그대학 학장으로 임명되고 1년 뒤 남아프리카교회협의회(SACC) 총무원장, 초대 흑인 케이프타운 대주교(1987년)로 임명되면서 그의 태도는 급격히 달라졌다"고 회고했다.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연설하는 투투 주교의 모습. /사진 Peter Williams/WCC
WCC 총무대행 이오안 사우카는 "투투 대주교는 에큐메니컬 운동에 충실한 공헌자였으며 우리에게 끈기의 가치를 가르쳐 주었다"며, "우리는 남아프리카의 국민들과 함께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며, 부정과 배척을 목도하면서 배제 대신 포용을 실천한 대주교님의 서거를 슬퍼하는 성공회 교인들과 에큐메니칼 공동체와 마음을 함께 한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WCC 국제문제위원회의 프랭크 치카네 목사 또한 "투투 대주교는 아파르트헤이트의 대척점에서 투쟁하며 정의의 편에 선 위대한 하나님의 예언자였다"면서 "그는 남아공 뿐 아니라 전 세계를 누비며 팔레스타인에 대해 자행된 불의에 맞서 싸우는 등 다른 사람들이 감히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그의 업적을 치하했다.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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