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서북지역 선교사 삼총사의 출행(出行)

1893년 서북지역 선교사 삼총사의 출행(出行)

[ 이야기박물관 ]

신상현 목사
2021년 12월 28일(화) 10:20
하나님은 개항이라는 혼란의 시기, 우리나라와 서양이 반목하고 있을 때, 이 땅에 선교사들을 보내주셨다. 사진 속의 서양인들은 왼쪽부터 소안론(W.L. Swallen), 이길함(Graham Lee), 마포삼열(S.A. Moffett) 선교사다.

그들은 모두 미국 시카고의 맥코믹신학교 출신으로 '서북지역 선교사 삼총사'로 불렸다. 당시 맥코믹신학교는 한국 선교에 크게 기여했는데, 무디(D.L. Moody) 의 영향을 받아 1886년에 시작된 학생자원운동(SVM)의 영향이었다. 1890년 한국에 들어온 마포삼열 선교사는 서울에서 한국어를 조금 배운 다음 여러 차례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을 여행했다. 그 이유는 서북지역에 이미 신앙을 가지고 세례를 기다리는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더우드(H.G. Underwood)와 헤론(J.W. Heron)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서울까지 찾아왔던 서상륜, 백홍준, 최명오의 이야기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던 벽안의 젊은 선교사들에게 놀라운 소망의 씨앗이었을 것이다.

이 사진은 1893년 1월, 서울 정동, 헤론이 살던 집 앞에서 촬영됐다.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박물관의 상설전 '씨는 자라 나무가 되어'에 전시된 사진이다. 헤론 선교사는 1890년 전염성 이질에 걸려 사망했으니, 그 집 앞에서 사진을 찍고 선교지로 출발하는 3인의 선교사들에게선 죽음을 불사하는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이미 평양을 수 차례 여행했던 마포삼열 선교사는 1892년 내한한 이길함, 소안론 선교사와 함께 평양을 향해 다시금 출발하고 있었다.

보통 선교여행은 짧으면 2주, 길면 6주간 지속됐는데, 두꺼운 외투와 머플러, 그리고 앙상한 나뭇가지가 그 추웠던 계절을 짐작케 한다. 그런데 사진 왼쪽의 소안론, 이길함 선교사는 생경하게도 호신용 장총을 들고 있다. 한국에선 그런 일이 없었지만, 중국이나 동남아에서는 선교사가 강도를 만나 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에서 호신용 무기를 소지하도록 한 것이었다. 조랑말의 등에 실린 짐보따리에는 미국에서 공수해 온 통조림 음식과 베개, 이불 등이 들어있었다. 이 또한 당시 열악했던 숙박시설과 풍토병의 위협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

당시 한국인 성인 두 명과 소년 두 명이 동행했는데, 그들의 이름을 알 길이 없어 너무나 아쉽다. 그러나 선교사들의 복잡한 심경이 교차하는 이 사진은 당시의 이야기들을 더욱 궁금하게 한다.

신상현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역사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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