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기도 안 했는데

솔직히 기도 안 했는데

[ 목양칼럼 ]

이민수 목사
2021년 12월 22일(수) 08:20
처음 부임했을 때 새벽기도회에 나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십리밖에 사시는 할머니 집사님이 차가 오면 나오시겠다 하여 신이 나서 달려가 모시고 오고, 마치면 태워다 드렸다.

그분이 글을 모르셨기에 강단에서 "찬송 몇 장 부르겠습니다" 하고 내려가 찾아드리고 다시 올라와 함께 부르고, 말씀 찾아드리고 올라와 봉독한 후 설교를 해야 했다. 그 뒤 또 글을 모르는 할아버지 한 분이 더 나오셔서 나는 두 배로 바빠졌다. 그랬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교인이 늘어 새벽기도회에 교구별, 선교회별, 교회학교별로 한 달에 한번 순서를 맡아서 대표기도하고 특송을 한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젊은이들 중심의 새벽기도회가 되어서 70세 이상 되신 분은 서너 분 정도 나올까 말까이다.

어느 날 한 집사님이 기뻐하며 다가와 '목사님께서 기도해 주셔서 응답받았다'며 감사해 했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그 집사님 기도 제목도 몰랐고 기도도 하지 않았기에 내 기도 덕분에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하니 가슴이 뜨끔하고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저 기도 안 했는데요' 하고 고백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사무엘 선지자가 자신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고백했는데 나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저지르고도 양심이 화인 맞은 뻔뻔한 목사였다. 그러고도 사례비를 꼬박꼬박 챙기고 또 성도들이 대접하는 것을 다 받았으니 내가 바로 삯꾼 목사였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부끄럽지 않은 목사가 될까를 고민하다가 떠오른 생각이 선교회별, 교구별, 교회학교별로 중보기도제목을 다 써서 내게 하였다.

성도들이 써 낸 기도제목을 통해 집안에 환자들이 많은 것과 속 깊은 문제들을 모두 알게 되었고 강단에서 선포하였다. "저도 여러분의 기도 제목을 붙들고 매일 기도할 테니 여러분들도 함께 동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교구장은 최소한 자기 교구를 위해, 구역장은 구역성도들, 선교회임원들은 선교회원들, 교회학교 부장들은 자기 부서를 위해, 교회학교 교사는 최소한 자기 반 학생들 이름을 부르며 함께 기도하자고 한 것이다. 그리고는 매달 기도제목을 새로이 받고 한 달에 몇 번 기도했는지 체크하며 보고하게 하였다.

필자에게는 목회하면서 생긴 여러 가지 별명이 있는데 '아이디어 뱅크 목사님', '체크 리스트 목사님' 등이 그것이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목사님이 모든 것을 체크해서 보고하게 하시니 도통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한 눈에 모든 것이 파악되고 놓치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도들의 모든 문제를 알고 기도하다 보니 성도들을 만날 때마다 안부를 묻게 된다.

"어머니는 좀 나아지셨냐?", "아버지는 좀 괜찮으시냐?"고 염려하며 문제를 다 알고 물으니 그저 일반적인 안부를 물을 때보다 모두들 감격해 한다. 이제는 기도 할 맛이 난다. 홍천군 기독교연합회장을 맡았을 때는 150여 개 교회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고, 노회장 때에는 90여 개 교회와 목사님들을 위하여 기도 했다.

예전부터 나에게 소중했던 분들 이름을 적어 기도하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 지금은 2000명이나 된다. 이름만 부르며 기도해도 한 시간이 넘는다. 물론 그들은 필자가 기도하는 줄도 모르고 있겠지만 은밀히 기도하는 재미가 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과 더 많이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이민수목사 / 홍천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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