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 인문학산책 ] 34

김선욱 교수
2021년 11월 10일(수) 10:48
근대의 자유주의자인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자유와 자유 아닌 것을 정확히 구분했고, 자유로운 인간이 존엄하다고 했다. 칸트에 따르면, 욕망에 사로잡혀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이성의 선택을 따르는 것만이 자유다.

거짓말에 대해 생각해 보자. 내게 거짓과 진실을 말하는 것 사이에 선택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짓을 말하려는 것은 그로 인해 유익이 생기고 진실을 말하면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나의 욕망이 승리할 때 거짓을 선택하게 된다. 그것은 나의 의지를 욕망에 굴복시키는 일이므로 자유로운 행동이 아니다. 인간은 진실을 선택할 때만 자유롭다. 이런 자유는 무엇이 옳은지를 인식할 때 얻게 된다.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정치는 시민의 덕성이나 인성을 육성하거나 교화하려 들어서는 안 되며, 정부는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관과 목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중립적 권리 체계를 제공하려 한다. 이러한 자유 관념이 오늘날 현실 정치에서 유행하게 된 것은 지난 70~80년 동안 일어난 일이다.

그보다 오랜 역사를 지닌 공화주의적 자유 개념의 핵심은 자치다. 그 역사는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여기서 자유는 시민들에게 공동선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며 정치 공동체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 가도록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 자신의 목표 선택에 대한 고민을 넘어서 타인에게도 나와 똑같은 권리가 있음을 존중하게 하고, 공적 사안에 대한 지식과 숙고를 요구하며, 전체에 대한 소속감과 책임감, 그리고 공동체와의 도덕적 유대를 요청한다.

간섭을 받지 않는 것이 자유라는 고전적 자유주의는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형성되었다. 산업혁명 초기에 과거 봉건제도 아래서 농노였던 사람들이 노동자로 유입되었다. 이때의 노동자들은 자본가가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영주가 농노를 보호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봉건 영주가 제공했던 보호 장치를 자본가가 제공하지 않고 계약 관계만을 지니려고 했을 때, 노동에 대한 자유 계약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말이 자유지, 실질적으로는 자본가의 자의적인 결정이 자유의 이름으로 포장이 된 것이었다.

이런 자유 개념 아래에서 자본가는 수요공급의 원칙에만 입각해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부려 먹으며 자신의 이익만을 최대로 추구하였다. 이는 애당초 노동자인 인간의 인간다운 삶은 관심에 없는 자유 개념이었다. 인간적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취약한 계약구조를 만들어내는 자유. 여기에 대해서는 "누구의 자유인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현대의 공화주의자인 필립 페팃은 '왜 다시 자유인가'에서 자유를 간섭 없음이 아니라 타인의 지배가 없음이라고 한다. 지배란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말한다. 간섭은 지배와 다르다. 연예인을 돕는 매니저는 연예인을 노예로 부리는 지배자가 아니라 연예인을 위해 간섭하는 사람이다. 간섭과 지배의 차이 때문에 '간섭 없는 지배'와 '지배 없는 간섭'이 구분된다. 주인은 노예에 대해 간섭 없는 지배를 한다. 매니저는 연예인을 지배하지 않고 계약에 따라 정해진 목적을 위해 연예인을 간섭한다. 전자의 경우 나는 자유롭지 않지만, 후자의 경우 나는 여전히 자유롭다.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고 하셨다. 자유의 전제조건은 진리다. 그런데 진리는 반드시 따라야 하므로, 진리를 알면 자유가 사라질 것이라고 느낄 수 있다. 스탠리 하우어워즈는 "성품이 바른 이들에게는 자신의 결정이 결정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내린 결정 이외의 다른 결정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덕과 성품', 203쪽)라고 한다. 덕의 관점이건 자유주의의 관점이건, 자유는 자의적인 것이 아니다.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자유에는 자유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로운 자는 타인의 삶을 불행하게 하는 자유를 선택할 수 없다.

김선욱 교수 / 숭실대 학사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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