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성경학교

여름성경학교

[ 시인의세상보기 ]

이재훈 교수
2021년 09월 08일(수) 10:00
1980년대에 유년을 보낸 사람이라면 여름성경학교의 추억은 누구나 한 가지씩 있을 법하다. 교회를 안 다니는 친구들도 일 년에 두 번씩은 교회를 꼭 찾았는데 여름에는 성경학교, 겨울에는 성탄절이 바로 그날이다. 놀거리와 먹거리가 귀했던 시절 교회에서 열리는 여름성경학교와 성탄절 전야행사는 온 마을 축제였으며, 어린이들에게 가장 재미있었던 이벤트였다. 저마다 과자와 아이스께끼를 하나씩 들고 마을을 돌아다니던 아이들은 모두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내게도 그런 유년의 추억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여름성경학교는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요즘 시쳇말로 하는 '라떼'의 이야기이다.

나는 강원도 영월, 횡성, 인제 등을 돌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교편을 잡으시다가 목회를 하신 아버지 때문에 강원도의 산간오지에서 청정한 자연혜택을 받으며 전형적인 촌아이로 컸다. 그 시절 시골 아이들이 다 그랬듯 까무잡잡하고 꾀죄죄하고 순박했다.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천도리는 벽촌 중에서도 벽촌이었다. 최전방을 사수하는 군부대가 많은 동네로 설악의 산맥이 깊고, 큰 강이 흐르는 곳이었다. 그곳에 서울 영락교회 청년부가 우리들의 여름성경학교를 위해 온다는 것이었다. 온 마을은 그야말로 축제였다. 동네 어머니들은 개를 잡아 보신탕을 끓이고(지금 생각하면 깜짝 놀랄 일이지만), 부처님을 믿는 집의 아이들까지 모두 교회로 집결했다. 그리고 풍성한 먹거리와 도시 교회에서 제공해준 각종 선물과 하얗고 깨끗하고 친절하기까지한 선생님들과 꿈같은 일주일을 보냈다.

지금은 막연한 기억만 듬성듬성 나지만 가장 잊히지 않는 것은 도시에서 온 대학생 선생님에게서 맡은 냄새였다. 나의 담임을 맡은 여선생님은 지금껏 맡아보지 못했던 향기를 풍겼다. 아마도 향이 좋은 비누냄새였던 것 같다. 그 냄새는 정서적 충격에 가까웠고, 나도 모르게 자꾸만 그 선생님 곁에서 서성거리곤 했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친절한 서울말로 늘 다정하게 웃어 주었다. 지금껏 받아보지 못했던 황송한 호의를 받아본 시골의 아이들은 헤헤거리며 동네를 뛰어다녔다.

그런데 모든 추억이 해피엔딩일 수는 없다. 여름성경학교가 끝나갈 무렵 나는 동네 어머니들이 솥단지에서 끓여 내온 고깃국을 연신 선생님 앞으로 배달했다. 선생님은 이 육개장이 너무 맛있다며 먹었고 나는 그 모습이 좋아 계속해서 육개장을 선생님께 들이밀었다. 나중 그 육개장이 보신탕으로 밝혀지면서 선생님은 개울가에 가서 먹은 것을 모두 토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내개 실망과 노여움이 섞인 눈빛을 보내며 연신 눈물을 지었다.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 선생님과 마지막 작별 인사도 못하고 말았다. 떠나면서 선생님이 나를 그렇게 찾았다는 것은 나중에 안 일이었다.

우리집 초딩 아들은 올해 여름성경학교를 온라인으로 치렀다. 영상을 통해 각종 찬양과 퀴즈와 이벤트를 하면서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소통했다. 내가 수십 년 전의 여름성경학교를 떠올린 것은 아마도 온라인 여름성경학교를 참여하는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나면 모든 추억은 감각으로만 남는다. 여름성경학교에서 행복해하는 시골 아이들의 까만 얼굴들, 서울에서 온 선생님의 냄새, 보물찾기를 하며 뒷동산을 뛰어다니던 모습, 동네 어머니들이 매일 해주시던 솥단지의 음식 냄새, 눈물을 흘리며 떠나시던 서울 선생님들의 얼굴. 이런 것들은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어제처럼 환하다.

여담이지만 그때 여름성경학교 이후 우리는 서울 영락교회 초청으로 벽촌어린이 서울견학을 갔다. 나는 학년 대표로 뽑혀 난생 처음 3박4일간 서울구경을 했고 3박4일만큼의 이야기를 가지고 왔다. 당시 강원도 벽촌에서 서울을 가본 아이는 지금 우주여행을 가본 아이와 비슷한 영위를 누렸다. 이때의 추억 또한 "나 때는 말이야"하고 '라떼'얘기를 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재훈 교수/시인·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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