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난 역사를 덮고 있는 죄의식

상처 난 역사를 덮고 있는 죄의식

[ 크리스찬 문학읽기 ] (완) 최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김수중 교수
2020년 12월 09일(수) 10:00
올해 이효석문학상을 받은 작품은 최윤(1953~ )의 '소유의 문법이었다. 소유에 대한 인간의 탐욕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지은 집들이 평화롭게 늘어선 시골 마을, 그리고 거기서 소유의 욕망에 함몰된 인간들이 벌이는 부도덕한 행위들과 종말론적 상실이 서로 대조를 이룬다. 이 작품을 대하는 독자들은 인간 부재의 현실 속에 내면화되어 버린 죄의식을 다시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이 작품의 작가를 통해 잠시 잊고 있었던 상처 난 역사와 그 속에 매몰된 또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할 기회를 얻는다. 최윤 작가는 오래전에 가장 고통스러운 역사의 문제를 서정적 방식으로 제기한 작품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 작품이 묘사해낸 원죄적인 부재의 상태 속에서 시간이 흘러갔고 사람들은 고통이나 서정을 모두 잃어버린 채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살고 있었다. 작가는 인간 부재의 현장을 현실적 방법으로 제시하며 인간의 원죄와 타락, 그래서 구원을 갈구하는 그때의 시간으로 독자를 조용히 이끌어갔다.

그동안 최윤 작가는 '하나코는 없다' '마네킹' 등의 문제작을 내놓았고 일반 사람들에게는 프랑스 문화학 교수로서 학문적 업적을 쌓으며 '불한성경' 번역에 앞장선 크리스천으로 더 익숙하게 알려졌다. 그러나 인간 부재를 주제로 한 소설 '소유의 문법'을 만나는 순간, 작가의 첫 작품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기껏해야 열다섯이 될까 말까 한 소녀가 머리채에 꽂힌 꽃보다 더 붉은 웃음을 흘리며 당신의 뒤를 쫓아와 오빠라 부른다.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우리를 따라오는 소녀의 배회를 가슴에 새기고 난 뒤, 오히려 우리는 꽃잎처럼 사라진 그 소녀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나아가 소녀를 찾아 떠나게 된다.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이 역사의 폭력은 5.18이며 소녀를 찾는 것은 원죄적 상황에 참여함을 의미한다. 크리스천으로서 상처 난 역사에 대해 죄의식을 갖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작가는 역사의 아픔을 증언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작품을 쓴 것이 아니다. 아픔을 잊지 않을 방법은 그것을 가슴에 각인하는 것인데, 최윤 작가는 르포 형식이 아니라 미학적 방식으로 독자들이 이 아픔을 새겨 주기 바랐다. 서정적이고 잔잔한 울림, 그러나 잔인할 정도로 슬픈 언어가 한 편의 레퀴엠이 되어 소설의 전편을 장엄하게 흐른다. 소녀의 오빠이며 우리의 친구인 누군가의 죽음 소식에 이어 엄마의 가슴에 구멍이 났다. 그 구멍을 가린 검은 휘장은 기억의 부재를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 우리가 이 아픔을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는 것은 부재를 벗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5.18을 언급하면 숙연한 추모의 한편에 아직도 여전한 정치적 왜곡이 존재한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소녀의 어머니와 수많은 시민이 당한 학살로 인해 실성해버린 소녀의 배회를 소재로 하여 죄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걸어가는 구원의 행로를 그렸다. 이 작품의 아름다운 문체와 내면화된 독백 속에서 정치적 논란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양심을 지닌 한 사람의 크리스천으로서 바라보는 저 소녀는 마치 원죄의 광야로 내몰린 아사셀 염소를 연상하게 한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산골 마을에서 일어나는 소유권 분쟁으로부터 한 도시를 비극의 현장으로 만든 권력의 욕망, 인간다움을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떠난 존재의 상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를 벗어날 회복의 방식을 이 작품의 표현법에 따라 말한다면 '한 점 꽃잎'을 찾아 헤매온 우리가 '아픈 역사의 꽃잎'을 따뜻한 손으로 붙드는 것이다.



김수중 교수/조선대 명예, 빛누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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