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견디는 자세

고통을 견디는 자세

크리스천 문학읽기 (24) 정호승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김수중 교수
2020년 11월 11일(수) 10:00
코로나의 고통이 극심했던 올해도 어느덧 초겨울로 접어들었다. 무섭고 끈질긴 전염병 속에 갇힌 우리는 이전엔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조차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지쳐 버렸다. 코로나라는 병 이전에도 갖가지 고통은 인간의 본질이자 숙명처럼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문학은 인간에게 고통이 있어야 삶이 풍부해진다는 따뜻한 위로를 쉬지 않고 전해 준다. 이런 글들을 곁에 두고 기억하는 사람들은 코로나로 닫혀 버린 이 삭막한 시대에도 괴로움을 묵묵히 견딜 수 있다.

그 위로의 힘이 실린 글 가운데 특히 생각나는 것이 정호승(1950~ )의 산문집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이다. 그는 '서울의 예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등의 시집으로써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시인이다. 그뿐 아니라 시로 다할 수 없는 인생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주기 위해 '우리가 어느 별에서',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같은 에세이집을 내기도 하였다. 한결같이 인간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글들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이 책은 어둠의 가치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시대적 고통에 큰 위로가 되었다. 어둠이 있기 때문에 빛이 있고 빛과 어둠이 함께 세상의 모든 색채를 만들 듯이 당신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어 함께 인생의 새벽을 기다린다는 주제를 내걸었다.

작가는 이 글들을 통해 고통의 의미와 공동체적 삶의 자세를 세상에 들려주고 싶어 한다. 의미 없는 고통은 없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누구나 고통의 무게를 견딜 줄 알아야 따뜻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고통은 선인장의 가시가 되고 독수리의 벽이 되기도 하며, 가뭄과 태풍을 견디는 벼가 되었다가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빵이 되어간다. "지금까지 내가 만든 내일이라는 빵에도 고통이라는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빵은 없다. 사랑과 이별의 고통, 분노와 상처의 고통, 배반과 증오의 고통, 가난과 좌절의 고통이 밀가루와 이스트와 함께 들어가 있다. 물론 기쁨의 눈물 몇 방울과 희망의 미소 몇 모금이 가끔 들어가기도 한다."

고통을 견디기 위한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고요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하였다. 작가의 글 속에는 영혼의 기도가 바탕으로 깔려있다. 그는 천주교인이고 불교에 매우 우호적인 종교관을 지니고 있으나 본래 기독교 가정에서 모태신앙을 갖고 태어났으며 자신의 삶과 글의 기반이 거기에 있음을 인정한다. 이 신앙적 시선과 손길로 고통의 의미를 감싸 안고 공동체의 삶을 향해 자기의 뜻을 펼친다.

세상에서 뒤틀리고 꼬인 인간관계를 풀기 위해 작가는 먼저 눈을 감으라고 한다. 눈을 감으면 비로소 남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진실과 화해, 그리고 사랑과 용서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어떤 신문을 구독하고 어떤 인터넷 광장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서로 편이 갈리고, 내 의견과 다르면 금방 적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는 코로나라는 공동의 적을 막아야 하는 현실에서도 오히려 그것을 빌미 삼아 더 심하게 편 가르기를 하는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다. 작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단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이라고 한다. 단 하나의 신문만 탐독하는 사람도 그런 축에 들 것이라 했다. '자기만의 사실'을 갖고 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도 얼마나 많은가!

이 책은 당신이 없으면 내가 행복해질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세상이 갈등과 분열로 얼룩지게 된 까닭은 '너'라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라는 존재가 '나'라는 존재 속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면 이 문제는 비로소 해결의 방책을 찾게 될 것이다. 고통을 견디며 공동체적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를 이해하며 사랑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당신이 없으면 나도 없다.



김수중 교수/조선대 명예·빛누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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