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시대에 꽃핀 인간 사랑

박해시대에 꽃핀 인간 사랑

[ 기독교문학읽기 ] 22. 김소윤의 '난주'

김수중 교수
2020년 09월 09일(수) 10:00
기독교의 선교 역사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모진 박해와 순교의 피로써 문을 연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고난의 아픈 사연이 초기 기독교사를 수놓고 있다. 개신교보다 백여 년 앞서 우리 땅에 들어온 천주교가 수난사의 중심이 되었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1801년에 일어난 신유박해와 황사영 백서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삼백여 명의 순교자를 낸 신유박해의 전말과 대응책을 흰 비단에 촘촘히 기록한 황사영은 그것을 중국에 있는 구베아 주교에게 몰래 보내려 했다. 그러나 밀서는 발각되었고 그는 능지처참을 당하고 말았다. 그의 가정도 풍비박산이 났으며 가족들은 관노비가 되어 먼 곳으로 유배를 떠나야 했다. 황사영의 아내는 명문 사대가의 맏딸로 태어나 기품 높게 살아온 여인으로서 부친은 정약현, 숙부는 다산 정약용이다. 이 여인 정난주가 제주도 땅에 관비가 된 채 갖은 고초 속에서도 신앙을 지킨 인생의 궤적을 소설로 탄생시킨 것이 이 작품이다.

작가 김소윤(1980~ )은 실존 인물 정난주 마리아를 표제로 삼은 소설 '난주'에서 두 가지의 심각한 과제를 제시한다. 신앙을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람들을 대신하여 이 땅에 남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믿음을 지킴으로써 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난주'의 대답은 마음과 뜻을 다한 인간 사랑과 하나님 나라의 자연스러운 확장으로 귀결된다.

난주는 제주도 가운데서도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차귀진에 빈민들의 초막인 구휼소를 만든다. 각종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위로를 받고 사랑을 나누는 그곳은 훗날 이 땅에 이루어질 교회의 모습을 상징한다. 난주는 그들을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할 뿐 아니라 제주에 와서 아들과 딸로 삼은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며 사랑한다. 그리고 난주는 직접 그리스도를 전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이렇게 기도하며 애를 썼다. 봄이 되면 꽃이 피고 겨울이 오면 눈이 내리듯 자연스레 이 믿음이 퍼져가기를, 그래서 때가 되어 이 복음이 사람들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릴 수 있기를 원했다. 열병과 재난이 닥치고 박해가 심해질수록 신앙은 감추어지지 않고 그 꽃과 열매가 더 아름답게 드러난다.

난주는 제주에 노비로 끌려가던 길에 아들에게 종의 멍에를 씌우지 않기 위해 그 젖먹이를 추자도에 버렸다. 잠든 아이의 앞섶을 열어 손끝의 혈서로 '경신생, 황경헌'이라 쓴 후 단단히 옷섶을 여미고 사람의 눈에 띌 만한 나무 아래 놓았다. 어머니 난주의 절통한 이별의 말은 하늘도 울리는 격정의 토로이며 기도였다. "어미와 떨어지거든 하늘이 찢어지도록 울어라. 울어서 네가 살아있음을 알려야 한다. 그래야만 네가 산다. 그 울음을 주께서 들을 것이고 사람의 귀가 들을 것이고 종국에는 인정이 움직일 것이다. 어미는 잊기도 잊으려니와 그리워도 말거라. 사무치는 그리움은 너를 상하게 하니 차라리 그리움을 모르는 것이 나으리라. 극통한 아픔은 이 어미의 가슴에 묻고 피눈물도 어미가 흘릴 것이다. 너는 그저 울고 떼쓰며 입고 먹으며 숱한 세월을 한날같이 아이로 자라거라." 작가의 감성적이고도 섬세한 필치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자유인으로 살아가기를 갈망한 어머니의 소망대로 37년 만에 이루어진 난주와 경헌 모자의 상봉은 이 작품의 말미를 감동으로 이끈다.

'난주'는 제 6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으로서 역사적인 제주의 아픔을 거슬러 올라 기억과 치유를 이루게 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고통의 수난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를 이루기 바라는 이 시대 크리스천들과 양심적인 지식인들에게 종교와 사상을 초월하여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김수중 교수/조선대 명예, 빛누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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