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의해 남겨진 상처는 몸에 남는다

사회에 의해 남겨진 상처는 몸에 남는다

[ 공감책방 ] 이 추천하는 첫책,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최아론 목사
2020년 06월 05일(금) 09:16
신앙인들을 위한 인터넷 북큐레이터가 될 <공감책방>이 6월부터 시작됩니다. 다양한 삶의 현장과 마주하는 신앙인들에게 두 분의 고수들이 번갈아 가면서 세상을 공감하고 기독세계관의 지평을 열어주는 책들을 추천할 예정입니다.


# 사회역학을 연구하는 학자의 탐구 결과물

동네 책방을 운영하면서 코로나로 인해 재난지원금이 나왔을 때 혹시 책방에 사람들이 책을 사러 몰려들지 않을까? 라는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물론 헛된 기대이었음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대가 무너진 다음에 괜히 정책에 대한 상상을 했는데, 재난 지원금을 쓰기 시작하려면 책을 한 권 사야 그 다음 결제가 가능하게 하는 정책이 있다면 좋겠다는 상상이다. 소고기, 삼겹살, 치킨, 예쁜 옷 그 다음은 무엇을 사든 순서가 필요하지 않지만, 우선순위는 책을 사야 한다. 돈을 쓰기 위해서 책방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사람들이 이야기하지 않겠는가? 너는 어떤 책으로 시작했어? 그런 상상의 끝은 책을 읽지 않던 사람들이 책방에 찾아와서 책 한권 추천해달라고 하면 어떤 책을 선뜻 건네야 하는 것인가였다.

흐뭇한 상상속에 책방에 오는 누군가에게 책을 소개한다면 맨 먼저 추천하는 저자는 김승섭이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자신의 첫 책이라고 밝혔음에도 출판사는 나와 비슷한, 아니 더 강한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이라면 이 정도 장정裝訂을 통해 세상에 보내야겠다는 의지 같은 것 말이다.

김승섭은 누구인가? 코로나로 인해 역학조사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는데, 역학Epidemiology은 질병의 원인을 찾는 학문이고, 김승섭은 사회역학을 연구하는 학자다. 그는 흡연과 석면이 몸에 나쁜 것처럼, 사회적 문제들 즉 차별과 사회적 고립, 고용불안이 인간의 몸을 해칠 수 있다는 연구가설을 탐구한다.

그렇다면 사회적 아픔의 경험들은 인간의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20세기 역사에서 전쟁과 기아와 잘못된 국가 정책들로 인해 굶주린 산모가 있었던 지역들을 조사해보니 태아기의 영양결핍이 성인기의 만성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절약형질가설'이라고 불리는 가설에 따르면, 임산부인 어머니가 충분한 영향을 섭취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하면, 태아는 생명체로서 선택을 해야 하는데, 한정된 영양분을 생존의 필수 기관인 뇌와 같은 기관에 사용하고, 당장 생존에 필요하지 않은 췌장과 같은 기관을 발달시키는 데는 적은 영양분을 사용한다. 그 결과 성인 이후에 당뇨와 심장병, 고혈압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오래전 사회에 의해 남겨진 상처가 성인 이후에도 인간의 몸에 남는다는 것이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이전 사회역학에 대한 책들의 대부분은 영미의 학자들의 연구의 번역본들이었다. 「평등해야 건강하다」,「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이다」와 같은 사회역학에 대한 책들을 보면 내용은 공감하다가도 우리의 상황과 겹쳐서 살펴보기가 어려웠다.

# 다음세대에 아픔 줄어들 길 물려줘야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우리 사회의 학교폭력의 피해자부터, 비정규직, 소방관, 전공의, 교도소와 쌍용자동차 해고자, 세월호 유가족, 가습기 살균 피해자와 같은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아픔이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통계와 데이터를 통해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서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위한 노력들을 담담히 기록하고 있다.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치열하게 기록하고 아픔을 이겨 낼 수 있는 길을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지만 견고해진 구조와 싸우는 사람들은 언제나 약자일 수밖에 없기에, 누군가 아픔이 있는 그들의 편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김승섭은 약자들을 대변해 구조와 싸우는 링위에 올랐다고 말한다. 자신의 장점은 오랫동안 싸우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우리 사회의 아픔들에 대해서 몇 십 년은 데이터를 쌓아갈 것이라고.

요한복음 9장에서 제자들은 날 때부터 보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예수님께 묻는다.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입니까? 부모 때문입니까? 듣지 못하는 사람이 아님에도 공공연하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상처들은 몸에 새겨진다. 설혹 그의 눈이, 다리가 치료받더라도 말이다. 예수님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도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리고 다음 세대에는 그런 아픔들이 줄어들 길을 만들어야 한다. 교회가 가진 사랑의 그물은 우리에게는 촘촘하지만, 우리 바깥을 바라보는 데는 너무 성기어 그 그물로 모두를 품을 수 없다. 그러니 사회역학의 도움을, 김승섭의 도움을 받자. 그의 책의 일독을 권한다.

최아론 목사 / 옥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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