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직업정신

이상한 직업정신

[ 목양칼럼 ]

전재훈 목사
2019년 09월 20일(금) 00:00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을 붙들고 목사 안수도 받기 전 32살의 젊은 나이에 영화 '살인의 추억'의 배경이 된 화성에 와서 교회를 개척했다. 가지고 있던 돈이라고는 딸의 치료비로 쓰려던 1800만원이 전부였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에 순종하면 딸을 고쳐주실 것이란 믿음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18평짜리 창고를 얻어 개척한 것은 정말 무모했다. 6평은 사택으로 만들고 12평을 본당으로 사용했다. 돌도 안된 쌍둥이들을 데리고 냉난방이 되지 않는 교회에서 함께 살 수 없었기에 아내는 아기들을 데리고 처가집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주일에만 교회에 와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개척 후 혼자 드리던 수요예배에 아주머니 한 분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몇 마디 대화를 해보니 정신이 온전치 않으신 분이었다. 그래도 혼자 예배를 드리다가 설교를 들어주는 분이 한 분이라도 계시니 힘이 났다. 아주머니는 설교 도중 일어나더니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이 좁은 예배실에 붙어 있어 설교가 들리기는 하지만 계속 설교를 해야 할지 잠시 기다려야 할지 난감했다. 설교를 멈추자니 화장실 소리가 들린다.

한 겨울에 가스 히터를 켜놓고 잠을 자다가 새벽에 추워서 깨기도 했다. 히터가 있는 쪽은 괜찮았지만 반대쪽 귀가 얼었다. 그 순간 괜히 어린 쌍둥이가 보고 싶어졌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아침 일찍 처가집에 달려가 아기들을 안아보았다. 장모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시길래 "어머님이 차려주신 아침밥 먹고 싶어서 왔다"고 에둘러 말했다.

교회에서 차로 20분만 가면 평택항이 나온다. 마음이 힘들 때면 종종 그 바다에 가서 울다 왔다. 배를 대는 항구에 차를 세워두고 주차브레이크를 내리려 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개척했지만 아기는 건강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지고 교인은 전혀 찾아오지 않았다. 하나님의 음성을 잘못 들은 것 같은 느낌과 더불어 하나님이 부르지 않았는데 목사가 된 것 같았고, 하나님이 선택하지 않았는데 혼자 좋아서 교회를 다닌 것 같았다. 바다는 내게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방에 집회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쳐버렸다. 딸 아이 병원비가 부족한 상태였다. 돈을 빌리기 위해 몇 군데 전화도 했지만 거절당했다. 고속도로에서 사고로 죽으면 보험금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면 딸은 이번 달에도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속도를 좀 더 높였다. 시속 150킬로에서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누워버리면 쉽게 해결될 것 같았다. 의자 옆에 달린 레버를 손으로 붙잡았다. 그 순간 귀에 찬양이 들려왔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재훈아 일어나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차의 속도를 낮췄다. 한쪽에 세운 뒤 아련하게 들리는 찬양소리에 울고 또 울었다. 그 때 뜬금없이 직업정신(?)이 발동했다. '이 이야기를 여전도회 집회 때 간증하면 좋겠다!' 스스로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전재훈 목사/발안예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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