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빼!"

"책상 빼!"

[ 목양칼럼 ]

박대준 목사
2019년 08월 16일(금) 00:00
사역하는 곳이 여의도 지역이다 보니 직장인들과의 교제가 많은 편이다.

필자는 직장인들에게 "신자는 교회가 아니라 현장에서 강해야 한다고, 그게 진짜 믿음이고 실력"이라고 얘기하며 신우회를 조직하게 하고 직장에서 예배하는 공동체를 세우는 일을 돕고 있다.

어느 날 강남 지역 규모가 큰 교회에서 장로님으로 섬긴다는 분에게 연락이 왔다. 여의도에 있는 증권사 부사장으로 있으며, 그곳에 신우회를 세우는 데 힘써 왔던 분이다. 장로님은 필자에게 점심을 같이 하자고 문자로 '데이트 신청'을 해왔다.

장로님과는 매주 신우회 예배 때마다 만나서 교제해 왔고 종종 '점심 데이트'를 통해 신우회 기도제목을 나누곤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다른 약속이 있어 장로님에게 '다음 날로 미루었으면 좋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장로님은 즉각 '오늘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일정을 조정해 볼 수 없겠냐고 답을 보내 왔다. 몹시 급한 이야기가 있나 싶어 일정을 정리하고 점심시간에 약속한 식당으로 갔다.

약속장소에 먼저 와 있는 장로님과 음식을 주문하고 이것저것 신우회 이야기와 가정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쳤다. 디저트로 주문한 차를 나누며, 분명 이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 같아 조심스레 근황을 물었다.

"장로님,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그러자 장로님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목사님, 제가 오늘까지만 출근합니다." 이틀 전 이사회가 있었는데 임원 승인이 되지 않아 퇴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이 장로님의 마지막 출근날인 것이다. 근 20여 년을 한 직장에서 근무했는데 이사회의 결정으로 3일 만에 자릴 비워야만 했다. 여의도라는 지역에서 사역을 하다 보니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직장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지난 주 신우회 예배 때 만난 사람이 이번 주 예배시간에 보이지 않는다. 왜 안 보이는지 궁금해 다른 이에게 물어보면 갑작스레 퇴직했다는 답을 듣곤 한다. 세상은 철저하게 능력이 평가의 기준이 된다. 조직에 도움이 되는가 그렇지 않는가, 이용할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가 평가의 기준이다. 그래서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면 그 사람 자리를 비우고 책상을 뺀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섬뜩해진다. 만일 주님께서도 세상 사람들과 같이 사람을 평가하신다면, 자리를 보존하고 이 땅에 남아 있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주님께 얼마나 쓸모있는 사람일까? 고개를 들고 하나님의 평가가 기록된 답안지를 볼 자신이 없다.

감사한 사실은 돌아온 탕자를 품에 안으시고 '잘 돌아왔다'고, '내가 잃어버린 아들을 찾았고,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고 기뻐하시는 주님이란 사실이다.

그래도 행여나 하늘에서 "책상 빼!"라는 소리가 들릴까, 두려운 마음으로 오늘도 내게 주어진 목양의 자리를 살펴본다.

박대준 목사/여의도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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