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어머니도 내 어머니다

병든 어머니도 내 어머니다

[ 논단 ]

남택률 목사
2018년 03월 06일(화) 13:58

지난 설 명절에 고향집을 찾았다. 필자의 집은 보성 웅치에서 흐르는 보성강 상류를 끼고 넓은 평야가 전개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필자가 살았던 마을은 1500년경 강원도 감찰사 의령 남씨 남흡이 유배생활 중 풀려나 장흥 장평에서 살다 사망함에 따라 그 후손들이 퍼져 동족마을을 이룬 곳이다. 80여 호가 집성촌을 이뤄 살면서 잘못을 엄격히 다스하고 착한 행실을 권장해 모범마을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6.25전쟁 이후로 마을엔 불행한 일이 한 건도 없었다고 한다. '탑골'이라고도 하고 '탑동'이라고도 불리는 마을, 까만 기와집에 삼대가 함께 북적거리며 살았다. 아름답고 기름진 땅, 항상 질서와 예절이 있고 나눔이 있었던 가족, 가난했어도 풍성했던 옛 고향집이 그립다.


지금도 아름다운 옛 고향의 시냇가에 돌로 쌓아놓은 보(洑) 밑에서 손 넣어 잡아 올리던 메기와 가물치의 퍼덕거리는 손맛을 잊지 못한다. 나무를 엮어 물에 띄우면 어느새 뗏목 타고 바다로 나간 '로빈슨크루소'가 됐다. 꼴망태 매고 산봉우리에 오르면 넓게 펼쳐진 평야 그리고 산들바람, 노래하며 내려오던 오솔길이 지금도 그대로다. 그리고 기억나는 건 당연히 어머니 이야기다. 설빔으로 받은 옷을 화롯가에서 태워 버린 날 밤새워 울던 동생을 보고 다시 사 줄 테니 울지 말라며 위로하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 "나는 아까 많이 먹었다"며 밥그릇을 건네주시면 정말 그런 줄 알았던 어린 시절, 그런데 어머니는 이번 설에도 똑같은 말씀을 하시면서 당신 드시라고 사다드린 귀한 음식을 내 앞으로 내미셨다. "난 아까 부엌에서 많이 먹어 배부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것은 어머니 사랑인 것 같다. 나를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하시는 병든 팔순의 내 어머님은 그 누가 뭐라 해도 이 세상 가장 소중한 나의 어머니이시다. 

그런데 어렸을 적 몹시도 추운 겨울날 어머니 손잡고 시골 교회를 처음으로 출석한 날부터 교회도 나의 어머니가 됐다. 교회를 안 좋게 얘기하는 친구하곤 사력을 다해 싸웠다. 교회를 욕하면 내 어머니를 모함하는 것처럼 들렸다. 요즘도 몸 된 교회에 돌을 던지면 잠을 이루지 못 할 만큼 아프다. 그리고 더 가슴 아픈 것은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세상에 동조해 돌을 던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끼리 싸울 수는 있다손 치더라도 왜 믿지 않는 자들의 가치로 교회를 폄하해야만 하는가. 

필자를 도시 중학교에 유학 보내는 일로 부모님의 의견 충돌이 있었다. 한 번은 입학금 문제로 크게 싸우시는 걸 목격했다. 어머니는 나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들아! 집안에서 일어난 일은 밖에 나가 말하는 게 아니란다." 나는 그때부터 집안에서 일어난 어떤 일도 밖에 나가 얘기한 적이 없다. 어머니를 욕되게 해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교회에서 일어난 좋지 않은 일도 나가서 절대 말하지 않는다. 부끄럽고 창피한 일은 스스로 노력하거나 기도로 해결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식장에서 '알베르토 까뮈'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정의를 사랑하지만 정의가 나의 어머니에게 총부리를 겨눈다면 나는 그 정의와 맞서 싸우겠다"고 말이다. '까뮈'가 어머니의 심장에 총구를 겨누는 자와 싸울 것이라고 한 말이 나에게는 추상같은 주님의 음성으로 들린다. 그는 생명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키푸리아누스'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사람은 교회를 어머니로 모셔야한다"고 했다. 칼뱅의 기독교강요를 가르치고 있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최윤배 교수는 '병든 어머니 일찌라도 그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라는 말로 교회 사랑을 가르친다고 들었다.

그렇다. 병든 어머니일지라도 우리는 그 어머니를 버릴 수는 없다. 그리고 마치 내 어머니가 아닌 양 타인들과 함께 서서 어머니를 욕해서도 안 된다. 아픈 어머니의 병든 부분이 위중하다면 치료를 위해 노력하고 밤을 세워 기도해야 할 것이다. 
현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어려운 교회의 일들을 보며 비난하는 사람은 많으나 기도하는 사람은 적은 것 같아 참 마음이 아프다. 두 눈 부릅뜨고 상대방을 감시하는 눈은 많으나, 두 눈 딱 감고 무릎 꿇는 사람은 적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화면 위에서 쉴 새 없이 속보를 찾는 손은 있으나, 다 내려놓고 주저앉아 기도의 손을 모으는 사람이 없는 현실이 너무 마음 아프다. 주님께서 은혜와 평강을 우리 위에 내려주시길 빈다.

남택률 목사
광주유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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