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 교회로 세상을 변화시키자

선교적 교회로 세상을 변화시키자

[ 오피니언 ] <기고>몰트만의 대화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6년 03월 14일(월) 17:33

몰트만의 대화

풀러신학대학교의 신학은 21세기 말의 신학을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선교적 교회는 모이는 교회가 아닌 흩어지는 교회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서 성장 위주의 교회가 아닌 개별 은사에 따라 각자의 삶의 자리가 선교의 현장이 되는 교회를 의미한다. 따라서 선교적 교회가 활발히 생겨나면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문화가 될 것이다.
 
2차대전 독일군인이었던 몰트만은 3년간 전쟁포로가 되어 여러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독일군에 의해 죽어간 유대인들의 죽음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되었다. 그 후 포로에서 풀려난 몰트만은 신학을 공부했고, 자신의 신학으로 세상과 대화하기 원했다.
 
그는 먼저 그리스도교-맑스주의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이 대화를 통해 가톨릭과 개신교, 그리고 맑스주의 철학자들까지 함께 모여, 시대의 문제들을 대화를 통해 풀어가는 일에 앞장섰다. 그리고 그 명맥이 이어져 1960년대의 정치신학으로 발전했다. 여기서 말하는 1960년대 정치신학은 교회를 정치판으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정치를 그리스도인답게 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교회가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자신의 근원을 두고 있는 지와 또 거기에서 자신의 정당성을 찾는지를 묻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예수의 메시지를 '그리스도인들의 정치'의 출발점으로 삼음이 교회가 나아갈 길이라고 하는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대화들은 점점 발전하여 유럽의 경계를 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학 안의 한 '운동'이 되어, 라틴 아메리카와 제3세계로 퍼져서 '혁명신학', '해방신학', 그리고는 '민중신학'의 한 운동으로 발전해 갔다. 이러한 발전을 토대로 몰트만은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와의 문제를 성만찬의 사귐을 통한 '교회일치'의 대화로 이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노력들이 1963년 세계선교협의회로 이어졌으며, 1976년 이후에는 유대교-그리스도교의 대화로 이어졌다. 몰트만의 이러한 대화를 기독교 운동사적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몰트만식의 대화운동이라 명명할 수 있다.
 
21세기 한국의 기독교는 그리스도가 문화가 되는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거룩'이라는 미명아래 세상과의 대화를 회피한다. 마치 강도 만난 자를 돕지 않는 레위인들처럼 말이다.
 
이러한 우리에게 몰트만 신학은 세상과의 대화를 요청한다. 그리고 교회내에서의 성도간의 대화도 요청한다. 또한 몰트만은 교회의 역할이 사람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흩어서 세상과의 대화의 자리에 서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교회는 헌금을 모아 건물을 지어 사람들을 담는 시대가 끝이 났음을 직시해야 한다. 풀러 신학도 이러한 오류를 인정하는 추세이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위해 그들의 삶의 현장이 사역의 현장이 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현장이 세상과의 대화의 통로가 되기를 소망해 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만을 위한 대화의 창구가 아니다. 그의 피는 모든 인류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오동욱 목사
부산노회 평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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