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자후원회

작은자후원회

[ 여전도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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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13일(수) 09:58

1991년 작은자복지선교회가 발족된 후 이사회는 정기이사회와 임시이사회가 있었다. 이 이사회에서는 작은자복지선교회 정책 수립과 사업 전반이 논의 됐다. 선교회 산하에는 작은자후원회가 있었다. 이 작은자후원회는 총회와 임원회가 있었다. 후원회 총회에서는 선교회 사업 전반이 보고됐다. 그러나 후원회원들은 앉아서 보고만 듣고 모금활동만 하는 회원들은 아니었다. 작은자복지선교회가 발족되고 3일 후에 작은자후원회 총회가 연곡작은자의집에서 열렸다. 이 연곡작은자의집은 후원회원들이 기도하며 일구어낸 장애인 시설이었다. 이곳에서 후원자들은 장애인 공동체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교제했다. 

같은 해 11월 연곡작은자의집에서 추수감사주일을 준비하기 위해 후원회 임원들이 모였다. 임원들은 그 지역 장애인을 초청하여 함께 예배드릴 준비했다. 연곡작은자의집을 그 지역과는 동떨어진 섬과 같은 곳으로 만들지 않고, 지역과 소통하는 곳, 지역 주민들이 갖는 같은 문제를 함께 아파하고 풀어나가는 곳으로 만들려는 노력이었다. 

"그동안 후원하셨던 선교사업의 상황이 현재 어디까지 와 있으며 목회 현장 속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를 친히 살펴봐 주시고 귀한 의견들을 나눠 주시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것은 '선교와 사회복지'에 실린 1992년 후원회 총회 개최 인사였다. 이 글에 의하면 후원회는 선교회 사업들을 후원하는 조직이었다. 그러므로 이 후원회 총회나 임원회에서는 선교회 모든 사업이 보고됐다. 

보고된 내용에 따라 후원회 회원들은 모금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 후원회가 모금활동만 전개한 것은 아니었다. 1992년 총회에서 장기후원자와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패가 수여됐다. 즉 후원회는 금전적인 기부뿐 아니라 재능도 기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이들의 활동으로 1992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이 도움은 한아협의 후원방법대로 결연을 통해 이뤄졌다. 1992년 7월 새롭게 후원이 시작된 33명을 포함해 후원금을 지원받는 결연아동은 유아 1명, 초등학생 19명, 중학생 47명, 고등학생 22명, 지체장애인 2명, 근로청소년 1명이었다. 해외 후원으로 필리핀 대학생 10명에서 장학금도 전달됐다. 필리핀 대학생 장학금은 한 학생당 매년 300달러였다. 1992년 총회에서는 또 다른 10명의 필리핀 대학생들이 장학금을 기다리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또한 후원아동 중 김민경 어린이가 국제문화 교육회와 한국음악연구회가 주최한 '세정음악제'에 참가해 초등학생부 금상을 수상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런 이야기들은 후원자들의 자랑이자 보람이 됐다. 
작은자후원회는 후원활동으로 작은자복지선교회 사업을 도왔고, 결연을 통해 지원이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재능기부를 통해 봉사활동도 했으며, 지역주민들과 함께 호흡할 방법도 모색했다.  /여전도회작은자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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