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척결과 北의 공작

친일 척결과 北의 공작

[ 여전도회 ]

김명배 대사
2015년 08월 11일(화) 13:51

김명배
前 주 브라질 대사ㆍ예수소망교회

우리 사회에서 수시로 문제되고 있는 '일제 유제(遺制) 미청산'은 소위 친일척결을 빙자해서 친북세력의 확대를 기도하는 북한의 대남공작의 일환이라고 생각된다. 이 문제는 8.15 해방 직후 미ㆍ소 군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해방 직후 미군은 남한에서, 소련군은 북한에서 각각 군정을 실시했다. 소련이 한반도 공산화라는 뚜렷한 전략적 목표를 갖고 있었음에 반해, 미국은 확고한 전략적 목표가 없었다. 

당시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미ㆍ소 양국의 인식의 차이는 미국이 정치적 식견이 없는 전형적인 무골(無骨)로서, 단지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오키나와 미 주둔군 사령관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지 중장을 군정장관으로 임명했음에 반해, 스탈린은 한반도 공산화를 전제로 고도의 정치적 식견을 갖춘 정치장교 출신 스티코프 대장을 군정장관으로 임명한 사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하지 장관이 당시 민주사회의 경험이 전무한 한국 사회에 200년 전통의 미국적 민주주의를 무리하게 적용하는 과정에서 남한사회의 혼란상이 가히 극에 달했다. 스티코프 장관은 부임 즉시 토지개혁, 근로조건 개선 등을 통해 조기에 민심을 수습하고, 김일성과 공모해 남한 사회에 온갖 혼란을 야기하는 한편, 제주도, 대구, 여수, 순천 반란사건 등 대남공작을 종횡무진 구사하면서 남침준비에 주력했다. 

반면, 하지 장관은 오로지 미국적 민주주의에 집착해 6.25남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당부분 원인을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동서냉전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정부는 하지 장관에게 조속히 안정적인 반공정부를 수립할 것을 지시하고, 하지 장관은 국내에 정치 기반이 없던 이승만을 수반으로 조기에 새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사회 혼란을 막고 행정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일제치하의 행정조직과 관료들을 대부분 새 정부에 등용함으로써 '일제 유제 미 청산'이라는 민족사적 과오를 범했다. 

하지 장관이 일제유제 미청산 못지않게 저지른 또 하나의 중대한 과실은 일제치하 독립운동의 본산이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초석인 상해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함으로써 후일 북한당국으로 하여금 소위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북한 정부의 정통성과 '남조선 적화통일'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빌미를 제공한 점이다. 일제 유제를 청산한 북한정권이 일제 유제 미 청산의 과오를 안고 있는 남한정부를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소위 민족자주를 명분으로 친북 세력의 확대를 기도하는 정치공작을 벌이는 원인을 제공했다. 좌경정부 시절 정치 제도권에 진입한 소위 '386 주사파' 세력들은 소위 자주를 명분으로 친일세력을 척결한다며 친북세력의 확대를 도모하는 정치음해를 벌이기도 했다. 당시 발표된 소위 '친일인사 명단'에는 대한민국의 건국과 6.25 공산침략을 격퇴하고 전후재건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우리사회의 존경 받는 지도급 인사들이 다수 포함된 점에서 북한 대남공작의 위선과 종북세력의 기만을 엿볼 수 있다. 

이 분 들은 일제시대에 이완용처럼 부귀영화를 누린 분들이 아니고, 은인자중(隱忍自重)하며 국민계몽과 사회발전과 국토방위에 묵묵히 기여한 분들이다. 이 분들을 친일로 규정해서 괴롭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에 대한 도리가 결코 아니다. 6.25의 국민적 영웅 백선엽 장군을 친일로 몰아가는 종북세력의 파렴치에 의분을 느끼면서, 백 장군께 무어라 위로의 말씀을 드릴지 송구스러울 뿐이다. 방일영 사장, 유진오 박사, 백낙준 총장, 김활란 여사, 서정주 시인, 김기창 화백 등 국가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을 친일이라고 말하는 종북세력의 위선과 기만에 분노를 느낀다. 우리가 친일의 기준을 도산과 백범과 안중근 의사의 수준에 놓고 판단한다면 이는 실로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는 가증스런 일이다. 그러한 기준으로부터 온전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 수 있을지 묻고 싶다. 국민들이 북한 정치공작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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