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위기 앞에서 무엇을 잡는가?

인생의 위기 앞에서 무엇을 잡는가?

[ 오피니언 ] 독자투고

강흔성 목사
2015년 05월 06일(수) 12:00

1년 전에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면서 1년 내내 나라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또 1년 만에 한 대기업 회장의 자살로 다시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작년에는 세월호가 침몰되었다면 올해는 국가지도자들의 비리로 인해 이 나라의 도덕성이 침몰될 위기에 있다. 이 사건은 단순히 권력형 비리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번에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 대부분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
 
검찰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대기업회장은 장로이고 사망한 분이 돈을 주었다고 폭로한 사람들이 국무총리, 대통령비서실장, 시장, 도지사, 국회의원 등 8명인데 그분들 대부분이 장로이거나 믿음이 독실하다고 소문난 크리스찬이다. 이번 사건 바로 직전에 방산비리 혐의로 구속된 이모 회장도 장로이다.
 
그러다보니 한 언론사에서 장로들의 수난사, 장로의 잔혹사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일반 언론에서 장로들의 잔혹사를 표현한 것은 기독교에 대한 비아냥거림처럼 들리는 것은 나만이 느끼는 자괴감이 아닐 것이다. 마치 부모 얼굴에 먹칠한 불효자식처럼 죄송한 심정으로 지난 주일에 '하나님 앞에 정직하십시오'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어느 대기업 회장의 말처럼 경제적으로는 세계강국이지만 정치적으로는 3류 4류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에 이번 일을 계기로 정치개혁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보았다. 모 언론사에서 하늘이 주신 계시(기회)라는 표현을 했던 것처럼 우리나라가 정치적 악습을 버리고 그야말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하면서 앞으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바라보고 싶다.
 
그러던 중 또다시 충격적인 사실이 언론에 밝혀졌다. 성 장로가 자살하기 전에 점쟁이를 찾아갔다는 기사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불교계의 전 총무원장인 모 승려와 함께 갔는데 그를 평소에 아버지 같이 모셨다고 설명하고 있다. 도저히 믿겨지지 않아서 기사를 읽고 또 읽었지만 찾아간 곳이 교회가 아니고 점집이었고 동행한 사람이 담임목사가 아니라 승려였다. 장로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지 않고 점쟁이를 찾아갔을까? 주변에서 권하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갔을 것이라고 좋게 생각해보려 했지만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신실한 장로라는 사람이 어떻게 승려를 아버지같이 따르고 존경하게 되었을까. 종교를 떠나서 누구든지 존경할만한 인품이면 그럴 수도 있겠지 관대하게 생각하려 했지만 왜 하필이면 아버지같이 여겼다는 말인가. 아버지라는 존재는 생물학적으로 생명을 주신 분을 넘어서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이다. 아버지는 만물이 그에게서 나오고 존재의 근원이며 구원과 복을 주시는 신앙의 핵심을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고 있다.
 
인생의 위기 앞에서 교회는 무엇이고 담임목사는 무엇이고 하나님은 무엇인가? 차라리 회사의 위기를 보면서 교회의 한 골방에 찾아가서 수많은 직원과 그의 가족들을 불쌍히 여겨달라며 피눈물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다가 숨졌다면 신앙인의 자존심만은 지켰을 것이다. 아니 정말 기적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위기와 불안함 속에 점쟁이를 찾아간 그의 모습에서 구약시대 사울왕의 종말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씁쓸하다.

강흔성 목사/수원상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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