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 안의 삶

그분 안의 삶

[ 여전도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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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7일(금) 14:41

최인기 교수
서울장신대학교ㆍ구약학

가톨릭 신자인 친구가 불치병에 걸렸다. 그는 구원이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살아왔다. 먼저 영접 기도 후, 개신교의 기도원과 치유집회를 소개해서 참석케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설교를 잘못 듣고 오해해서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자기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에 자기 삶이 깨끗해지고 변화된 후에야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질문했다. 물에 빠진 사람이 물속에서 수영을 배운 후 빠져나오겠는가, 아니면 살려달라고 소리쳐서 건짐을 받아야 하는가? 그래서 몇몇 성경 말씀을 전하고 물에 빠진 어린 아이의 심정으로 예수님께 호소하라고 말해주자 그가 구원과 믿음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도 복음의 본질을 마음판에 항상 새겨야 한다. 어린 아기가 그냥 그대로 부모님의 사랑을 받아 누리는가? 아니면 어린 아기가 커서 부모님에게 착한 일을 해야 사랑을 받는가? 어린 아기가 울면 어머니가 얼른 달려와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준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은 사랑받을 수 없고, 마치 나중에 자라서 자식 노릇을 할 때에 가서야 사랑받을 것처럼 행동한다. 그 결과 우리의 봉사와 섬김은 늘어만 가는데 마음은 점점 더 공허해지고 허탈해진다. 우리는 종인가, 자녀인가? 지금 종으로서 살아가는가, 아니면 자녀로서 살아가는가? 한때 자녀로 아버지께 부르짖음이 있었지만 이제는 종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복음은 능력이다. 사랑받는 자녀로 부르짖는 영적 능력이 있어야 이 시대 신앙의 침체를 벗어날 수 있다.

기억하자. 우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다"(롬 8:15, 갈 4:6). 로마서 8장 15절에는 한글 성경에는 없는 "그분 안에서"가 있다. 우리는 양자의 영이신 성령님 안에서 아버지께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녀로서 울부짖음이 없이 하나님의 종인 것처럼 봉사하기 위해서만 힘쓰고 있다면 그것은 성령을 소멸한지 오래된 것이다. 에베소 교회는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가지고 있었고 많은 미덕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책망하셨다(계 2:1~5). 루터는 "성화란 믿음이 굳세지는 것"이라고 했다. 자녀로 울부짖는 것이 거룩한 행실과 봉사보다 항상 먼저 중요하다. 신앙 성숙이라는 것도 아버지께 울부짖는 우리의 부르짖음이 세월이 지나갈수록 더 간절해지는 것임을 잊지 말자. 시편 23편 1절에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면 나는 부족함이 없다고 했다. 이제 우리가 자녀로서 간절한 부르짖음을 잃어버렸다면, 이것을 회개하는 것이 급하다. 이제 우리의 모든 자랑 다 버리고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서 아들딸로서 어린 아기처럼 아버지께 다시 울부짖을 때이다. 어느 자리에 있든지, 그리고 교회에 모여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가지고 아버지께 나아가 다시 간절히 울부짖을 때이다. 이렇게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는 믿음이 다시 회복될 때 우리 교회는 그 즉시 다시 부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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