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겨운 여성안수 허락, 기독공보도 역할 커…

눈물겨운 여성안수 허락, 기독공보도 역할 커…

[ 여전도회 ]

차유진 기자 echa@pckworld.com
2014년 08월 26일(화) 15:16
   
▲ 본보 제1495호, 1984년 2월 18일자에 실린 여성안수 지상토론. 여성 능력 개발을 교단 성장의 중요한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본교단 총회에서 여성안수가 허락되기까지 60여 년의 노력을 살펴보면 정말 눈물겹다.

여전도회는 1933년 시작된 청원이 수차례 부결되자 홍보지 제작, 목회자와의 간담회 및 기도회, 회원 릴레이 기도, 관련 서적 출간, 여성안수를 위한 예배 마련, 총대 설문조사, 여성문제연구소 개소 등 다양한 노력을 전개했다.

특히 여성안수가 허락된 1994년에는 전국연합회 모든 수련회에서 여성문제 강좌를 진행했으며, 교단 내 여성 단체들과 함께 기도회 및 협의회를 진행하고, 지연합회 임원들은 노회 대표와 총회 총대들을 1대 1로 만나 협력을 요청했다. 이와함께 자발적으로 금식에 나서는 지연합회장들까지 있었다. 또한 당시 전국연합회 김옥인 회장은 2년의 임기 동안 전국의 모든 노회를 방문해 노회 대표들의 협력과 동의를 구했으며,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제79회 총회에선 24개 노회가 여성안수 허락을 헌의했으며 투표를 통해 총 1321명 중 701명의 찬성으로 가결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노회수의 절차가 남아 있었다. 여전도회는 1995년 1월 여전도회주일을 기점으로 40일 새벽기도에 들어간다. 이때 작성된 공동기도문을 보면 "한국교회가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때에 성직에서나 평신도의 신분에서나 남녀가 하나되어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루는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주께서 우리 여성들에게 주신 섬김과 봉사의 은사로 병든 사회를 치유케 하시며 한국교회의 부흥과 일치 그리고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 과업에 동반자 역할을 감당케 하시옵소서"라는 여성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있다.

여성안수가 허락되기까지 본보의 역할도 컷다. 여전도회가 주최하는 각종 좌담회들을 적극적으로 보도했으며, 설문, 독자투고 등을 통해 교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여성안수 법제화 노력이 전국으로 확산된 1970년대 중반을 보면, 본보는 제60회 총회(1975년)를 앞두고 각계 인물들의 여성안수에 대한 입장을 게재했다. 이때 이연옥 명예회장은 '초첨 60회 총회'라는 제언(제1094호, 1975년 9월 20일)을 통해 "교회에서 남성이 50%의 역할을 감당하면 나머지 50%를 여성이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모두 100%의 책임을 완수할 때 성숙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여성이 주어진 능력을 최선을 다해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섭리"라고 강조했다.

61회 총회를 앞두고는 제41회 여전도회전국연합회 총회 기사를 '여장로제 총회에 청원' 제하의 기사(1137호, 1976년 8월 27일자)로 다뤄 여성안수에 대한 여성들의 입장을 전달했다. 1979년엔 총회 임원과 여전도회전국연합회의 좌담회 기사(제1250호, 1979년 1월 6일자)를 통해 교인의 다수가 여성인데 여성들이 소수 집단으로 취급받는 현상을 지적하고, 여성들의 위상과 생활 변화에 따른 장기적 계획 수립을 촉구했다. 같은 해 8월엔 총대 설문을 근거로 총대들의 의식을 분석한 기고(1279호, 1979년 8월 18일자)를 게재했는데, 당시 총대들은 여성안수가 매년 부결되는 이유에 대해 전통적 남성 우위의 사회관념 때문(41%), 성서의 가르침이 아니어서(26%), 신학적 근거가 빈약해서(14%)로 답했다. 1984년 한국교회가 100주년이 된 시점에는 여성안수 찬성ㆍ반대 지상논쟁(제1495호, 1984년 2월 18일자)을 진행하기도 했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